[사설] 트럼프·문재인·김정은 체제 속 한국 안보는 어디로 가나

조선일보
입력 2018.06.14 03:20

트럼프 미 대통령이 12일 싱가포르 기자회견에서 밝힌 주한 미군 관련 언급은 한·미 동맹의 뿌리를 흔드는 것이어서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매우 도발적(provocative)'이라고 규정했다. 북한이 한·미 훈련을 비판할 때 써 온 논리가 동맹국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1953년 한·미 동맹을 맺은 이래 실시해 온 합동훈련은 북침용 군사훈련과 거리가 멀다. 북한의 전면전과 기습공격에 대비해온 방어용 훈련이었다. 더욱이 한·미 연합훈련은 북의 핵 공격만을 막기 위한 것은 아니다. 핵을 제외한 북의 재래식 군사력은 전 세계 200개 국가 중에서 최상위권에 들 정도로 위력적이다. 북한 비핵화 과정 시작을 이유로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한다면 북의 재래식 도발은 어떻게 막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합동훈련을 하지 않는 군사동맹은 모래 위에 쌓은 성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회담 합의문에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추상적 목표만 담겼을 뿐 북핵을 폐기하는 구체적인 방안과 시한은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폐기를 위한 확실한 교환 카드인 한·미 훈련 중단을 선심 쓰듯이 북에 선사했다. 북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한 동결 대가로 한·미 훈련을 맞바꾼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동안 북한과 중국이 북핵 해법으로 줄기차게 주장해 온 '쌍중단(雙中斷,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동시 중지)'을 트럼프 대통령이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 됐다. 실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식 북핵 해법을 받아들였다고 논평했다. 북한과 중국이 하라는 대로 북핵 합의를 이루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나 마찬가지로 손쉬운 일인데 그는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자랑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시간씩 괌에서 비행기가 한국까지 날아오는데 비용이 정말 많이 든다"며 B-1B 전폭기를 비롯한 전략자산의 전개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한·미 훈련을 '워 게임'이라고 부르면서 "그걸 중단하면 엄청난 액수의 돈을 절약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엄청난 액수의 돈'이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했다. 그는 지난 2월 한·미 간 무역 불균형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서 주한 미군 철수를 압박 카드로 쓰려 했다는 보도가 나왔었다. 미 대통령이 설마 그런 생각을 했겠는가 믿기지 않았는데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돈 문제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이날 "주한 미군을 철수시키고 싶다"는 뜻의 발언도 세 차례나 연속적으로 했다. 한국에 왜 주한 미군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인식을 솔직히 드러낸 것이다. 그는 대통령 후보 시절에도 비용 문제를 거론하며 주한 미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 미군은 지금은 논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을 뿐이어서 주한 미군의 대폭 감축 또는 전면 철수가 곧 가시화될 우려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연합훈련 중단 관련 발언에 대해 청와대는 "정확한 의미나 의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미·북) 대화를 원활히 진전시킬 여러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미 훈련 중단이 미·북 및 남북 관계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담고 있는 반응으로 읽힌다. 미국의 최고 통수권자 입에서 '주한 미군 철수' 희망 발언이 나왔지만 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미·북 정상회담에서 핵 담판이 이뤄지고 나면 한반도의 안보 불안이 해소될 줄 알았는데 훨씬 위험하고 불확실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앞으로의 핵 폐기 과정을 믿고 맡겨도 될지 불안하다는 것이 국민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현재의 남·북·미(南北美) 3국 지도자 체제에서 한국의 안보는 어떻게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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