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世說新語] [471] 양비근산 (兩非近訕)

조선일보
  •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8.06.14 03:17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홍문관에서 학을 길렀다. 숙직하던 관원이 학의 꼬리가 검다 하자 다른 이가 날개가 검다고 하는 통에 말싸움이 났다. 늙은 아전을 심판으로 불렀다. "저편의 말씀이 진실로 옳습니다. 하지만 이편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彼固是, 此亦不非)" 무슨 대답이 그런가 하고 더 시끄러워졌다. 대답이 이랬다. "학이 날면 날개가 검고, 서 있으면 꼬리가 검지요." 학의 검은 꼬리는 실제로는 날개의 끝자락이 가지런히 모인 것이었다. 그의 설명을 듣고 다들 우스워서 데굴데굴 굴렀다.

    예전 사마휘(司馬徽)가 형주(荊州)에 살 때 이야기다. 유표(劉表)가 어리석어 천하가 어지러워지겠으므로 그는 물러나 움츠려 지내며 스스로를 지킬 생각을 했다. 남들과 얘기할 때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고 '좋다'는 말만 했다. 그의 아내가 퉁을 주었다. "어째 따져 보지도 않고 다 좋다고만 하우?" 사마휘가 대답했다. "자네 말이 또한 대단히 좋네."

    우리나라 황희 정승도 이와 비슷한 일화가 전한다. 이런 얘기도 있다. 한 번은 누가 와서 "삼각산이 무너졌답니다"고 했다. 황희가 "너무 높고 뾰족해서 그랬겠지" 라고 대답했다. 잠시 뒤 "아니랍니다"라고 하자 그가 또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 기세가 좀 완전하고 굳세던가?" 더 따지지도 않았다.

    이익이 '성호사설'의 '어묵(語默)'에서 위 이야기를 제시하며 말했다. "어떤 일을 의논할 때 둘 다 그르다고 하는 것은 비난에 가깝고, 둘 다 옳다고 하면 아첨에 가깝다. 시비를 바르게 분간하기 어렵거든 아첨하느니 차라리 비난하는 것이 낫다. 하지만 어지러운 나라에 살면서 일에 대해 판단할 때 꼼꼼히 헤아리지 않는다면 재앙을 불러들이고 만다. 이 때문에 침묵이 귀한 것이다.(言議, 兩非近乎訕, 兩是近乎䛕. 如不得是非之正, 與其䛕也寕訕. 然居亂邦, 應接事物, 樞機不密, 禍之招也. 故嘿之為貴也.)"

    침묵하면 비겁하다 하고, 의견을 내면 그 즉시 비난한다. 이쪽 말이 맞지만 저쪽 말도 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두루뭉수리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해서야 되겠는가마는 일마다 시시비비를 갈라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니 세상에 싸움 잘 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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