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최고 승자, 패자는 한국...트럼프, 승자이자 패자"

입력 2018.06.13 15:18 | 수정 2018.06.13 15:47

‘세기의 회담’으로 불린 지난 12일 미∙북 정상회담의 승자와 패자는 누구일까.

외신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최고의 승자로 꼽은 반면, 한국을 패자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또 하나의 승자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승자이자 패자로 언급됐다.

미국 인터넷 매체 복스(VOX)는 12일(현지 시각) ‘4명의 승자, 4명의 패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의 최고의 승자는 김정은 위원장, 패자는 한국이라고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반은 승리했고, 반은 패했다”고 평가했다. 또 김정은의 친구인 데니스 로드먼 전 미국프로농구(NBA) 선수와 그의 싱가포르 방문을 지원한 디지털화폐 업체 팟코인도 승자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패자로 분류했다. 북한 국민들도 패자라고 봤다.

워싱턴포스트(WP)는 김정은과 북한 정권의 승리라고 했고, 타임과 뉴욕커는 북한과 중국이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을 승자로 언급한 것은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의 해법으로 제시한 쌍중단(雙中斷·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과 쌍궤병행(雙軌竝行·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체제 협상을 병행 추진하는 것)이 어느정도 받아들여졌다는 이유에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6월 12일 오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호텔에서 공동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왼쪽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오른쪽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 연합뉴스
◇ 최고의 승자 : 김정은...“원하는 것 다 얻었다”

VOX는 “김정은은 미국의 대통령이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와 악수를 청하고, 스스로가 북한의 합법적인 지도자임을 인정해주는 영예를 얻었다”며 “그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은 채 원하는 것을 다 얻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오랜 기간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기를 원했지만,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은 그들이 정식 국가가 아니라는 이유에서 미·북 정상회담을 거부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지도자를 만나 북한의 경제 개발뿐 아니라 한미연합훈련의 중단도 약속했다.

북핵 전문가인 제프리 루이스 미들버리 연구소 연구원은 “김정은은 오랜 기간 핵무기 보유국임을 인정받고 싶어했다”며 “정상회담으로 그는 오랜 소원을 성취한 것”이라고 말했다.

WP는 ‘더이상 양보는 없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의문의 여지 없이 싱가포르 회담은 김정은과 북한 정권의 승리였다”고 밝혔다. WP는 “김 위원장은 미국이 요구해왔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와 북한 정권의 범죄 행위에 대한 어떤 변화도 약속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 패자 : 한국...“원했던 결과 맞나?”

VOX는 한국에 대해 미·북 정상회담의 패자라고 지적했다. VOX는 “트럼프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북한과 협상하는 동안 한미연합훈련을 멈추겠다고 밝혔다”며 “한국 정부는 이 내용을 사전에 전달받지 못했고, 여전히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은 미·북 정상회담의 성사를 주선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됐다는 것이다. VOX는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을 위해 물심양면 협조했지만, 뒤통수를 맞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했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5월 22일(현지 시각)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더 큰 문제는 한미 동맹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오는 8월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은 북한을 상대로 한미 군사 동맹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행사다.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의 장기적인 목표가 핵무기를 이용해 한미 군사 동맹을 약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VOX는 “북한은 비핵화라는 당근을 흔들며, 한국에게 불리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이용당한 것”이라고 전했다.

◇ 승자이자 패자 : 트럼프...“역사적 첫 만남, 그러나 얻은 게 없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VOX는 “반은 승자, 반은 패자”라고 평가했다.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난 역사상 첫번째 미국 대통령이라는 점에서는 승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정상회담에서 많은 것을 얻은 것에 비해 미국의 성과는 거의 없다.

제임스 액톤 카네기 연구소 소장은 “합의문에 적힌 북한 비핵화에 대한 내용은 너무 약했다”며 과거 북한이 제시한 비핵화 약속들보다 구속력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는 의기양양해 보이지만, 실제로 회담에서 어떤 성과도 얻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이 핵전쟁의 위험을 낮췄다고 볼 수도 없다. 미라 랩후퍼 예일대 로스쿨 교수는 “물론 핵전쟁보다 정상회담이 낫지만, 지금까지 불거진 북한의 핵전쟁 가능성이 모두 트럼프 때문에 생긴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수확이 없다”고 전했다.

◇ 또 하나의 승자 : 중국...“손 안대고 코 풀었다”

타임은 이번 회담이 북한에 승리를 안겼고, 더 나아가 중국이 진짜 승리자라고 평가했다. 타임은 “북한과 미국은 모두 회담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장기적으로 진정한 승자는 중국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타임은 “수년간 중국은 한반도의 긴장감 완화와 군사훈련 규모 축소를 원했고, 갑자기 두 가지를 다 얻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비핵화의 과정으로 한국과의 군사훈련을 중단할 것이라고 한 트럼프의 발표는 근본적으로 중국이 몇년간 추진해왔고 이전 미국 대통령들이 일관되게 거부한 제안인 쌍중단”이라고 했다.

지난 7~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 다롄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가졌다. /신화 연합뉴스
뉴요커도 북한과 중국이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언급한 것과 관련 “북한과 중국이 가장 큰 승리자가 됐다. 김 위원장이 엄청난 정당성을 얻었고, 북한의 가장 큰 동맹국이자 무역 상대국인 중국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다”고 보도했다. 뉴요커는 “성명은 남북회담에서 했던 말을 대부분 되풀이했고, 미래 회담을 위한 모호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 숨겨진 승자 : 로드먼과 팟코인...“홍보 제대로 했다”

이밖에 VOX는 ‘눈물의 CNN 인터뷰’로 회자된 데니스 로드먼 전 미국프로농구(NBA) 선수와 그의 싱가포르행을 후원한 디지털화폐 업체 팟코인을 승자로 꼽았다. 이들은 미·북 정상회담의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데니스 로드먼이 12일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입국하고 있다. 로드먼이 입은 티셔츠에 후원업체인 ‘팟코인’의 인터넷 주소와 로고가 새겨져 있다. /NBC캡처
수년간 “북한이 미국과 대화하고 싶어한다”고 주장해온 로드먼은 미·북 정상회담 개최 소식에 눈물을 흘리며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싱가포르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의 초청으로 2013년 처음 북한을 방문한 뒤 지난해 6월까지 총 다섯 번 북한에 갔다.

팟코인은 온라인상에서 합법적으로 대마초를 구매할 수 있는 가상화폐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의료용뿐만 아니라 오락용 대마초 판매와 구매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로드먼은 입국 당시 팟코인의 온라인 주소와 ‘평화는 싱가포르에서 시작된다’는 문구가 쓰여진 티셔츠를 입었다.

◇ 숨겨진 패자 : 존 볼턴...“할 말 제대로 못했다”

패자로는 미국 협상단에서 밀려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과 인권 유린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이 거론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에서 인권과 관련된 논의를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노동신문은 12일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 악수하는 모습을 13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대북 강경파’로 알려진 볼턴 보좌관에 대한 거부감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면서 미·북 정상회담에서 그의 존재감이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지난달 16일 담화에서 볼턴 보좌관의 ‘리비아식 비핵화’ 등의 발언을 겨냥해 “조·미 수뇌회담을 앞둔 지금 미국에서 망발이 마구 튀어나오고 있는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비난했다.

북한 관영매체인 노동신문이 지난 12일 확대정상회담 시작에 앞서 미북 정상이 자국의 인사를 상대방에게 소개하는 장면을 보도한 사진에서, 김정은은 볼턴 보좌관의 손을 잡고 이빨까지 드러내며 밝게 웃고 있고 볼턴 보좌관은 다소 경직된 상태에서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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