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토슈즈 신은 춘향의 애절한 사랑

조선일보
  • 이태훈 기자
    입력 2018.06.13 03:00

    발레 춘향

    우리에게도 이렇게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있다. 발레라는 서양 그릇에 담았지만 무대 위에 빛난 것은 한국적 아름다움과 서정, 해학이었다.

    춘향과 몽룡이 사랑을 속삭이는 첫날밤 파드되(2인무).
    춘향과 몽룡이 사랑을 속삭이는 첫날밤 파드되(2인무). '발레 춘향'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사진가 김경진
    유니버설발레단의 창작 발레 '발레 춘향(안무 유병헌)'이 토슈즈 끈을 고쳐 매고 돌아왔다. 초연 뒤 11년 안무·무대·의상까지 끊임없이 담금질하고 벼려온 노력이 맺은 결실이다. 9~1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무용수들은 기립박수를 멈추지 않는 관객에게 서너 번씩 커튼을 내렸다가 올리고 답례를 했다.

    춘향 이야기지만 극적 구성은 고전 발레 문법에 충실했다. 춘향과 몽룡이 처음 만나는 광한루 장면은 동네 처녀 총각들이 어우러지는 무도회처럼 그려졌다. 1막 마지막에 춘향과 몽룡이 처음 사랑을 나누는 첫날밤 파드되(2인무), 2막 끝 무렵 암행어사가 되어 돌아온 몽룡과 정절을 지킨 춘향이 만나는 재회의 파드되를 배치한 것도 고전 발레의 문법. 여기에 유병헌 예술감독이 선곡한 차이콥스키 음악이 마치 이 발레를 위해 작곡된 듯 맞춤하게 어울렸다. 첫날밤 파드되의 만프레드 교향곡, 방자와 향단의 해학적 움직임이 도드라져 보이게 한 관현악 조곡 1번 등이 특히 안무와 잘 녹아들었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역시 춘향과 몽룡의 첫날밤 파드되. 두 사람이 수줍게 겉옷을 벗으면 춘향과 몽룡은 낭만 발레의 남녀 주인공이 입은 흰 발레복처럼 하늘거리는 속곳 차림으로 사랑을 속삭인다. 암행어사가 된 몽룡의 군사들과 변사또의 무사들이 관아의 연회장에서 부딪히는 남자 무용수들의 군무는 관객들의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심정민 무용평론가는 "유니버설은 문훈숙 단장 특유의 서정적 안무가 특징이었다. 이번 작품에서 보여준 에너지 넘치는 남성 무용수 군무는 그간 이 발레단이 기울여온 노력을 보여주는 커다란 진보"라고 했다.

    내내 무대를 빛낸 것은 무엇보다 이정우 디자이너가 만든 한복. 최근 별세한 한복 디자이너 고(故) 이영희 선생 딸인 그는 "서양의 관능미가 드러내는 것이라면, 한복은 한 겹 더 감추는 것"이라고 했다. 춘향의 하늘거리는 치마는 로맨틱 튀튀보다 아름다웠고, 은은하게 비치는 소재 덕에 무용수들의 몸의 선도 더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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