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검은 옷과 붉은 옷 여성 행렬

입력 2018.06.13 03:14

유소연 사회정책부 기자
유소연 사회정책부 기자
낙태죄 폐지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단이 이르면 연내에 나온다. 앞서 헌재는 2012년 낙태죄가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당시에도 합헌과 위헌이 4대4로 팽팽했다. 몇 년간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 낙태죄를 없애라는 일반 여성들의 목소리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여성들이 검은 옷을 입고 거리에 나섰다. '낙태죄를 폐지하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이 23만명을 넘어서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현행 법제는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낙태죄를 폐지하면 가뜩이나 바닥인 출산율이 더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그러나 낙태죄 폐지가 출산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당사자 여성의 시각에서 보면 좀 다를 수 있다. 젊은 여성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비(非)출산' 논의 이면에는 여성으로 살기 팍팍한 환경에 대한 반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단순히 '애 키우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여성에 대해 불평등한 현실을 해소하기를 바라는' 일종의 사회 저항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낙태에 대한 처벌보다는 결혼제도 밖에서 태어난 아이에 대한 차별 없는 사회 분위기, 여성 경력 단절을 막는 제도적 장치, 독박 육아 해소 같은 해법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지 않을까.

지난달 19일엔 서울 대학로 일대에 '분노'를 나타내는 붉은 옷을 입은 여성 1만200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홍익대 몰카 사건 피해자가 남성이라서 경찰이 유달리 강경하게 수사했다"고 비판했다. 이 주장에 동의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아직도 우리 사회가 여성이 살기에 불편하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낙태죄가 없어지면 낙태가 늘 것이라는 우려도 기우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005년 호주제를 폐지할 때도 '가족제도가 무너지고 사회 혼란이 일어난다'는 우려가 있었다. 2015년 간통죄를 없앨 때도 "성 도덕이 문란해지고 이혼이 급격히 늘 것"이라는 한탄이 나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현재 걱정했던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대신 제도 아래서 제약받던 개인의 자유 폭이 한층 넓어졌다. 임신한 여성이 단지 낙태죄가 없어졌다는 이유로 수술대에 오르진 않을 것이다.

엄격한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가 최근 국민투표를 거쳐 낙태를 허용하기로 결정하면서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5개국 중 하나가 됐다. 이제는 우리도 낙태죄가 없어진 이후 국가가 태아의 생명권을 어떻게 보호할지 고민해야 할 단계가 아닐까. 여성 스스로 임신·출산을 결정할 권리가 주어진 사회에선 여성들의 아이 낳기 망설이는 마음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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