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일 칼럼] 트럼프 '나쁜 거래' 하면 대한민국만 '낙동강 오리 알'될 판

조선일보
  • 류근일 언론인
    입력 2018.06.12 03:17

    北이 대륙간탄도탄 폐기하고 '韓·美 동맹 해체' 얻어내면 한국은 지속 가능성마저 불안
    북 체제 변화없이 돈만 퍼주면 反인권 범죄자 금고 채워주는 惡의 공범 행위가 될 뿐

    류근일 언론인
    류근일 언론인

    '북한과 나쁜 거래를 하는 기법은 미국만 위해(危害)에서 옮겨놓자는 것.' '트럼프가 하려는 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데 자신을 앞지르는 이가 없도록 하겠다는 것.'

    트럼프-김정은 회담에 앞선 6월 9일 자 월스트리트저널(WSJ) 사설의 한 구절이다. 트럼프가 북한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 이전에 일단은 북한의 ICBM(대륙간탄도탄) 폐기를 얻어내는 선에서 김정은에게 '체제 보장'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다.

    이렇게 되면 1948년에 세운 대한민국과 그 지지자들만 낙동강 오리 알처럼 될 판이다. 김정은이 말하는 '체제 보장'이란 한국을 떠받쳐 온 가장 튼튼한 버팀목, 한·미 동맹을 해체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대로라면 최악의 경우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까지 불안할지 모른다.

    주한 미군을 감축·철수하고, 미국의 핵우산을 거두고, 한반도 주변에 미국의 전략 자산을 배치하지 않고,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영구 중단하고…. 이런 변화가 한꺼번에 닥치진 않더라도 그런 것이 앞으로 협상 테이블에 오르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미국 의회가 제동을 걸고는 있지만, 트럼프는 무슨 흥정이라도 하려면 할 타입이다.

    대한민국 자유민주 진영은 이제야말로 개인적 실존이건 집단적 실존이건 삶이란 얼마나 '절대 고독' 그 자체인가를 절실히 느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안일하고 나태하고 '안보 공짜' 의식에 절어 살았다. 어떻게 되겠지, 설마 망하기야 하랴, 미국이 봐주겠지… 하고 태평 무심하게 살다가 이 지경이 됐다.

    반면에 북한은 어떻게 되는가?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묵인받는 상태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김정은은 핵·경제 병진(竝進) 노선에서 오로지 경제 건설로 매진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셈인가? 자유의 나라 미국이 지구 최악의 전체주의-전제(專制)-사교(邪敎)-신정(神政) 체제(cultish theocracy)를 인정해주고 거기다 핵 이빨까지 달아주는 꼴이 될 것이다. 우리더러는 수백조 원에 달할 북한판 마셜플랜의 봉 노릇이나 하라고 한다.

    한반도 운명은 결국 북쪽의 김정은 전체주의 집단과 남쪽의 '민족 해방 민중민주주의 변혁 운동' 출신들의 합작에 장악되었다. 남쪽의 자유민주 세력은 한몫 들기는 고사하고 '보수 패당' '적폐 세력' 낙인이 찍혀 소멸당하고 있다. 이 '우리 민족끼리 혁명'에 중국·러시아는 적극 개입하려 하고, 미국은 냉정한 셈법으로 돌아서려 한다. 한·미 틈새는 이미 벌어졌다.

    문정인 청와대 특보는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 미군의 계속 주둔을 정당화하기 힘들 것"이라 했다. 그러자 어느 미군 장성은 "미군은 그 나라 국민이 원하는 한에서만 주둔한다"고 응수했다. 이런 판에 '1948년의 대한민국'과 그 진영에 솟아날 구멍이란 과연 있을까?

    요행을 바랄 순 없다. 그렇다고 지나친 비관도 부질없다. 지금이라도 우리 내부와 미국 조야를 향해 한반도 운명에 관한 '광야의 소리'를 외쳐야 한다. 김정은과 마주 앉는 트럼프 대통령이 무엇을 명심해야 할지도 일깨워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CVID만 하면 그의 지위와 체제가 보장되고 북한이 부자가 될 것이라 했다. 그러나 이야말로 솜사탕 같은 언변(言辯)이다.

    김정은은 CVID를 할 생각도 없고 할 수도 없다. 그가 리비아의 카다피처럼 죽고 싶어 할 까닭이 없다. 북한은 또 지금의 체제를 변혁하지 않고선 '주민 기준'의 부자가 될 수 없다. 북한 경제는 사회주의 중앙 통제 경제(A), 김정은 비자금 경제(B), 장마당 경제(C), 군부 경제(D)로 나뉘어 있다. A는 무너졌고, B는 국제 제재로 위축됐고, D는 주민 복리와는 무관하고, C만이 새로운 생존 수단으로 등장했다.

    이 넷 중 유일하게 '부자 될 길'은 그래서 C뿐인데, 이걸 공인하고 확충하자니 정보-인력-물자 흐름이 늘어나 김정은 신격화가 흔들릴 수 있다. 그의 취약점이다. 그가 과연 이 위험을 무릅쓰려 할까? 그렇다고 지금의 낡은 A, B, D가 그대로 있는 채 거기다 돈을 퍼준다면 그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고, 악(惡)의 공범 행위다. 반(反)인륜·반(反)인권 범죄자의 비밀 금고만 채워주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