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철의 스틸 라이프] 백자 사발에 쌀밥 담아, 오이지 한 점 먹으니 여름 성큼...

  • 장우철 사진작가
    입력 2018.06.14 06:00 | 수정 2018.06.14 08:58

    파란 그릇 줄까, 하얀 그릇 줄까
    혼자 사는 이에겐 밥공기보다 큰 돈부리 그릇 추천
    옹기 종기 그릇에 깻잎지, 장조림, 오이지 담아 먹는 즐거움


    희거나 푸르거나. 밥 위에 반찬을 올려 한그릇 덮밥처럼 먹을 수 있는 전형적인 돈부리 그릇./장우철
    집안일을 놓고, 가만 보면 두 부류가 있는 듯하다. 설거지가 그렇게도 싫은 사람과 설거지만큼은 신나게 하는 사람. 전자인 나는 어쩌다 후자라는 이를 만나면 활짝 웃으며 이렇게 묻는다. “혹시 이번 주 일요일에 시간 있으세요? 드릴 선물이 집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거든요.”

    야트막한 백자엔 갓지은 완두콩 밥이 제격

    실은 오늘 설거지를 하다가 옛 일이 하나 떠올랐다. 뽀드득 씻겨 옴팡옴팡 뒤집히는 그릇들을 보는데, 1985년 논산부창국민학교 4학년2반 석길순 어린이(그녀는 내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가 교내 어버이날 글짓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던 글의 첫 문장이 생각난 것이다. “부엌에서 들리는 달그락 합창 소리에 눈을 떴다.” 참말로 귀엽고 착실한 표현이 아닌가. 키가 크고 눈이 깊던 길순이는 어디에 살고 있을까. 그녀는 설거지에 관해 전자일까, 후자일까.

    밀린 달그락 합창을 다 하고서 나는 밥을 먹는다. 야트막한 백자에 방금 지은 완두콩밥을 푸고 찬물을 붓는다. 밥의 꼭대기가 섬처럼 수면 위로 보이도록. 곁에 둘 반찬은 한 가지, 오이지다. 6월은 바야흐로 오이지의 계절이 아닌가. 일년을 기다린 보람이 야무지게도 오종종 세계를 이루고 있으니 나는 중얼거리기를, ‘오이지는 유리그릇에 담아야 해. 쌀밥을 백자사발에 담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왜곡된 선과 조형이 위트있는 이혜미 작가의 그릇./장우철
    나는 혼자 살지만 그릇이 꽤 많다. 그릇은 어여쁘니까 옷만큼이나 철마다 사들인 결과다. 그런데 다 하나씩이다. 식구 수대로 밥그릇 국그릇 짝 맞추며 흐뭇해하시던 어머니의 기쁨을 나는 모를 것이다. 다만, 하나하나 어디서 왔는지, 얼만큼 예뻐하는지 잘 안다.

    여기 검은 무늬 그릇을 보라. 처음에 나는 이것이 그늘 같았다. 피어난 꽃이 아니라 그늘의 무늬라 여겼다. 뭔가를 담는다면 검정색에 가깝거나(장조림이나 깻잎지처럼), 아니면 전혀 엉뚱한 것이어야(한동안 잣송이를 담아 선반에 두었다) 한다고 짐작했다. 오늘은 여기에 밥을 푸고 장조림을 듬뿍 얹고 싶군. 그럼 이제 장조림 재료를 사러 나갈까나.

    부엌 찬장이 아닌 책상 선반에 그릇 담아 감상하는 즐거움

    분류하자면 가장 많은 것은 역시 흰 그릇이다. 사발과 접시, 면기와 종지, 넙적하거나 갸름하거나 움푹 패었거나, 흰색은 과연 단정하고 간결하다. 그 다음은 푸른 무늬가 있는 것들이다. 쓰임은 흰 그릇과 거진 같지만 좀더 눈 여겨 보게 되는 구석이 있으니, 뭔가 특별한 음식을 했다 치면 꼭 푸른 무늬가 있는 그릇을 찾는다.

    달그락합창을 끝낸 그릇들./장우철
    이런 생각도 한다. 만약, 혼자 사는 (설거지가 끔찍한) 이에게 추천한다면 푸른 무늬가 있는 돈부리 그릇이 좋겠다고. 밥공기보다 크지만 냉면그릇보다는 좁고 깊은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면, 적당히 밥을 푼 다음, 그 위에 반찬을 가지가지 덮밥처럼 얹는 것이다. 혼자서 칠렐레팔렐레 온갖 반찬통을 다 꺼내놓고 먹는 것처럼 스스로 보기 싫은 장면도 없을 터, 한끼에 그릇 하나면 족하니 얼마나 알맞게도 단출한가.

    그런데 가끔 나는 부엌에서 책상으로 그릇의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모니터 위 선반에, 모니터 옆구리 한적한 곳에 그것들을 놓고 잠시 눈을 쉰다. 그릇은 언제나 뭔가를 담기 마련이라서 어쩌면 다정한 마음마저 흩어지지 않고 거기에 담지 않을까 한다.

    어머니는 오늘 무슨 음식을 어디에 담아 드셨을까. 그 마음이 담긴 그릇을 만지며 어머니께 전화를 건다. 일곱시니까, 지금쯤이면 저녁상을 물리고 이웃에 마실을 가셨으려나. 나는 굽이 있고 금테도 두른 흰 그릇을 계속 만지며 전화기 저쪽 어머니의 목소리를 기다린다.

    ◆장우철은 한 잡지의 에디터로 15년을 보내다 한여름에 그만두고는 이런저런 일을 한다. 요새는 ‘DAZED KORE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HOUSE VISION SEOUL’의 에디터, ‘샌프란시스코마켓’의 라이터(이상 수입 순), 사진가 등으로 불리며 글쓰고, 사진 찍고, 인터뷰하고, 기획하고, 진행하고 그런다. 또한 해마다 초겨울이면 엄마가 짠 참기름과 들기름을 파는 기름장수가 되기도 한다. ‘여기와 거기’, ‘좋아서 웃었다’ 두 권의 책을 냈다. 몇 번인가 전시를 열었고, 서울과 논산을 오가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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