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의 '역사속 인물과 와인' ⑥칠레 독립전쟁의 영웅 오히긴스와 '와인 120'

입력 2018.06.11 10:58

칠레의 독립영웅 오히긴스<사진=와인리뷰 제공>
1814년 10월, 칠레 독립전쟁의 영웅 오히긴스는 120명의 패잔병을 거느리고 안데스 산맥을 넘으려 했다. 퇴로의 저편에서는 칠레 주둔 스페인군이 맹렬한 기세로 추격해 왔다. 지친 병사들은 더 이상 패주를 지속할 수 없었다. 마침 알또 하우엘(Alto Jahuel)의 낡은 양조장을 찾아내고 장군은 후덕스레 보이는 안주인에게 피난처를 요청했다. 마담 도냐 파울라(Dona Paula)는 지체 없이 피로에 지친 병사들을 양조장 지하 창고에 숨기고 먹을 것을 장만해준 뒤 그 위를 헛간의 건초로 덮어 위장했다. 곧장 뒤쫓아 온 스페인 추격대는 주변을 샅샅이 뒤졌으나 할 일 없이 되돌아가야만 했다. 오히긴스를 비롯한 120명의 독립군은 이곳에서 몸을 추스린 후 안데스 산맥을 넘어 멘도사에서 아르헨티나의 독립 영웅 호세 데 산 마르틴 장군과 해후했다. 장군의 후원을 업고서 오히긴스는 멘도사에서 3년간 전력을 다듬고 4,800명의 독립군을 거느리고 다시 안데스를 되넘어왔다. 그리고 수도 산티아고를 탈환해 사실상 칠레의 독립을 실현시켰다. 이후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으나 국정 수행과 관련 야당의 엄청난 저항에 스스로의 선택을 가졌다.
산타 리타 와이너리 전경<사진=와인리뷰 제공>
1823년 1월 28일, 산티아고의 의회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스페인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 독립을 선포한 지 꼭 5년 뒤의 일. 독립전쟁의 영웅 오히긴스가 칠레 최고의 통치자로서 의회에 출석, 그의 마지막 선택을 행사코자 했다. 표출된 불만을 스스로 수용하고 반대파에 굴복, 대통령직을 떠날 것인지, 아니면 막강한 권한을 휘둘러 반대파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유혈의 참극을 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순간이다. 마침내 오히긴스가 단정하게 다듬은 머리, 양 어깨에 술이 달린 견장, 화려한 금실로 수놓은 재킷,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으로 흘러내린 통치자의 휘장, 그리고 꽉 조이는 백색 바지에 부츠를 받혀 신고서 연단에 섰다.
120 와인<사진=와인리뷰 제공
대통령은 이내 열정 어린 사자후를 토해냈다.
"나는 독립을 쟁취키 위해 죽음의 전장에서 이름 없는 숱한 용사들과 헌신했다. 눈 덮인 안데스 산을 넘으면서 조국 독립을 맹세했다. 그리고 마침내 독립을 이루어 냈다. 이제 집권 5년 동안 내게 잘못이 있었다면 나를 단죄해라. 나로 인해 어떠한 피를 흘리고 싶지 않다."
장내는 순간 흥분의 물결이 일었다. 대통령의 열정 어린 애국심에 깊은 충격을 받은 반대파들도 뜨거운 박수로 포용을 나타냈다. 하지만 대통령은 눈가에 이슬을 비치며 의회를 떠났다. 권력자의 아름다운 퇴장이었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자통차로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알또 하우엘이 있다. 이곳이 바로 칠레 독립전쟁 유허의 하나이다. 주변은 넓은 포도밭이 펼쳐져 있고 멀리 안데스 산맥의 준봉이 흰 눈을 이고 있다. 지금 이 땅의 소유주는 칠레 와인의 명문인 산타 리타이다. 당시의 셀러 등이 잘 복원되어 있다. 주인아주머니는 건국 유공자로 서훈되고 그녀의 초상화가 방문자를 향해 미소를 띠고 있다. 와이너리는 역사적 기념으로 120명의 생존자를 기념해 와인병 레이블에 '120'을 올리고 있다.
한국 시장에서는 롯데주류가 '120 와인'을 수입하고 있는데, 알맞은 가격대로 소비자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와인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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