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옥에서 만나요” 일터를 넘어 만남의 장(長) 된 사옥

입력 2018.06.11 07:15 | 수정 2018.06.11 07:25

커피 마시러 철강 회사에, 전시 보러 화장품 회사 간다
‘인스타 성지’ 된 열린 사옥, 회사 홍보는 물론 직원 애사심 높여

포스코센터에 문을 연 테라로사 카페, 1, 2층 공간을 터 웅장함을 자랑한다./김은영 기자
“여기 완전 인스타 감성인데요?”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의 한 카페, 대학생 손모(23) 씨가 스마트폰으로 연신 사진을 찍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핫(hot)’한 곳이라기에 찾아왔죠.” 바로 옆 테이블엔 노트북을 펴놓고 작업에 열중인 사람들이 보인다. 취업준비생 한모(28) 씨는 “이전엔 대학로에서 공부했는데, 여기가 더 공부하기 좋다고 해 2주 전부터 장소를 바꿨어요. 들어가고 싶은 회사가 테헤란로에 있는데, 인근 직장인들의 모습을 보며 공부하니 더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아요.”

◇ 철강 회사엔 커피 마시러, 화장품 회사엔 전시 보러

사옥(社屋)이 변하고 있다. 사옥은 회사의 직원만 들어갈 수 있는 폐쇄적인 공간이었지만, 이제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포스코센터는 지난 4월 창립 50주년을 맞아 서울 사옥의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재단장했다. 유명 맛집 17곳을 입점시키고, 영풍문고와 카페 테라로사 등을 들여놓았다.

특히 1~2층에 자리한 테라로사는 SNS에서 화제를 모으며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높이 6m인 1층과 4m인 2층을 터 웅장함을 살린 이 공간은, 철강 자재와 안전모 등을 사용해 제철소라는 기업의 이미지를 부각했다.

북카페를 콘셉트로 꾸민 테라로사 포스코센터점, 아쉽게도 책을 읽을 순 없다./김은영
기자가 찾은 시간은 평일 오후였음에도 빈 테이블을 찾기 어려웠다. 자리를 채운 이들도 사원증을 건 직장인부터 노트북을 켜놓고 공부하는 학생, 아이 손을 잡고 온 젊은 주부와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여성까지 다양했다.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던 대치동 주민 김모(55) 씨는 “예전에 은행이 있던 자리라, 가끔 은행 업무를 보러 왔다. 카페로 바뀌었다고 해 의아했는데, 막상 와보니 분위기가 좋아 친구들을 데리고 왔다”고 했다.

◇ “우리 회사에 놀러 올래?” 열린 사옥, 직원 애사심 높여

서울 용산구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신사옥도 ‘열린 사옥’으로 인기를 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공간을 대중에 개방하고 미술관, 카페, 음식점 등으로 꾸몄다. 지하에 있는 한 빵집은 줄을 서서 대기해야 할 정도로 사람이 몰리고, 현대적으로 꾸며진 미술관도 명소로 주목받는다.

폐쇄적이었던 사옥이 개방을 시도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의 정체성을 대중에게 알리고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 크다. 대학원생 김모(32) 씨는 “남자라 화장품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 다녀온 후 회사에 호감이 생겼다. 단순히 화장품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아름다움이란 문화를 만드는 회사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개관 첫 전시로 라파엘 로자노헤머 전을 선보이고 있다./아모레퍼시픽 제공
직원들의 애사심을 높이는 데도 효과적이다. 포스코 직원 박모(43) 씨는 지난 주말 가족을 데리고 회사에 왔다. “갤러리 관람을 하고 외식을 하고 차도 마시니 반나절이 훌쩍 지났다. 아빠가 이런 곳에서 일한다고 하니 아이들도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외부인이 쉴새 없이 사옥에 들락거리는 것이 불편하진 않을까? 아모레퍼시픽 한 직원은 “가족과 친구들을 회사로 불러 맛있는 것도 먹고 문화생활도 할 수 있어서 좋다. 회사에 즐길 거리가 많으니 출근길의 부담도 줄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 인스타 명소로 떠오른 사옥, 회사 홍보는 덤

열린 사옥은 사람을 불러 모으고 지역상권을 활성화한다. 사옥의 너른 공간을 돈이 되는 수익 모델로 만들 수도 있다. 2010년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그린팩토리’라는 이름으로 사옥을 연 네이버는 건물 1, 2층을 열린 도서관으로 꾸며 지역 명소로 거듭났다. 특히 3800여 권의 국내외 잡지가 구비된 매거진룸은 월평균 5만여 명이 방문할 만큼 호응을 얻는다.

아모레퍼시픽은 용산 주민과 공간을 나누기 위해 열린 사옥을 지었다. 홍보팀 김미나 씨는 “1950년대 이곳에 처음 사옥을 지었고, 이번에 세 번째 건물을 신축했다. 회사의 역사를 함께한 만큼 지역민이 찾아오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네이버 그린팩토리 도서관./네이버 제공
포스코센터에 입점한 테라로사도 기대 이상의 매출을 거두고 있다. 허일화 테라로사 매니저는 “사무실 인근 매장은 평일 점심시간을 전후로 손님이 집중되는 편이지만, 포스코센터점은 온종일 고객들이 들어온다.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도 가족 단위로 오는 손님이 많다”고 밝혔다.

트렌드 정보회사 스타일러스 코리아 안원경 실장은 “멋진 공간을 찍어 소셜미디어 올려 감성을 나누는 라이프스타일이 퍼지면서, 공간을 통해 기업 가치를 경험케 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사옥은 물론 호텔 로비까지 삭막한 공간이 대중 친화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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