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면이 말한다… 트럼프의 '1對6 결투'

입력 2018.06.11 03:00

G7 정상회의, 결국 분열 속 폐막
트럼프 "동맹국에 관세폭탄" 고수… 獨·佛·英·日·伊·캐나다와 갈등

9일(현지 시각) 독일 총리실이 캐나다에서 열린 G7(서방 선진 7개국) 정상회담 사진 한 장을 총리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공개했다. 사진 속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쏘아보듯 응시하고 있다. 메르켈 오른쪽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서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팔짱을 낀 채 멀뚱히 메르켈을 바라보고 있다. 미국과 유럽 정상 사이에 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표정은 답답하다. 미국 대 나머지 G7 국가, 즉 G1 대 G6로 분열돼 혼란한 G7 회의를 이 사진은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메르켈은 쏘아보고, 트럼프는 팔짱끼고, 아베는 답답하고… 쪼개진 G7
메르켈은 쏘아보고, 트럼프는 팔짱끼고, 아베는 답답하고… 쪼개진 G7 - 9일 캐나다 퀘벡주에서 열린 G7(서방 선진 7개국) 정상회의 중 한 장면. 좁은 탁자를 짚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응시하고 있다. 메르켈 옆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테리사 메이(맨 왼쪽 안경 쓴 이 뒤쪽) 영국 총리가 서 있다. 이들 반대편엔 팔짱을 낀 트럼프 대통령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 맞서 있다. 유럽 정상들과 미국 정상 사이에 서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표정은 복잡하다. 미국과 나머지 국가들(G6)로 쪼개진 이번 회담의 혼란상을 가장 압축해 보여주는 사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올해 G7 정상회의는 의례적인 공동성명 한 장 만들어내지 못했다. /독일 총리실
G7 회의 일정이 남아 있었지만 사진이 찍힌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이 열릴 싱가포르로 떠났다. 출발 직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성과에 대해 "엄청난 성공"이라며 "(G7 정상들 간의 관계가) 10점 만점에 10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동맹국에 대한 '관세 폭탄'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우리(미국)는 모든 이가 강탈하는 돼지 저금통 같다. 그리고 그것은 끝난다"고 했다. 미국의 관세 폭탄에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국가들에는 "실수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가 빠진 정상회담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정상들은 공동성명도 내놓았다. 보호무역과 관세 장벽을 배제하겠다는 원론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싱가포르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회의 개최국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성명 내용을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격분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관세 장벽을 없앤다는 공동성명 내용에 동의한 적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장 자신의 트위터에 "미국 대표단에 공동성명 내용을 승인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트뤼도 총리에 대해 "매우 부정직하며 약해 빠졌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캐나다 총리실은 트럼프 대통령이 성명 내용에 동의했다며 즉각 반박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보복 관세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맞설 뜻을 분명히 했다. 영국 BBC는 G1(미국)과 G6 간의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깊어졌다고 했다. 2차 대전 후 서방 세계가 지켜내려던 가치의 분열이라는 평가(CNN)가 나왔다.

이번 G7 정상회의는 미국과 EU·캐나다 등의 무역 분쟁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는 시기에 열렸다. 공동성명 채택조차 어려울 거라는 비관적인 관측이 많았다. 무역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를 선언한 이란 핵 합의와 파리기후변화협정 등의 이슈에도 미국과 나머지 G6 국가 간 의견 차가 컸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를 G7에 재가입시켜 G8으로 만들자고 주장해 갈등의 골을 키웠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무력 합병 후 G8에서 축출됐다. 메이 총리는 "왜 G8이 G7이 되었는지 기억해 보자. 러시아가 다른 길을 택한 것이 확실한 건지 확인돼야 한다"며 강력 반대했다. EU와 캐나다엔 관세 폭탄을 터뜨리면서 러시아에 대해선 G8 재가입 제안을 한 트럼프에 대해 존 매케인 미 상원의원은 "동맹에 보여줘야 할 존중과 존경을 적국에 보여주는, 설명이 안 되는 일을 했다"며 "세계에서 미국의 지도력을 깎아 먹는 확실한 길"이라고 비판했다.

정작 러시아는 트럼프의 'G8 구상'에 심드렁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는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러시아 입장에선 G7보다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G20(주요 20개국)과 같은 협의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G7의 기능이 사실상 정지됐다. 그간 G7이 만들어 온 질서의 권위를 의심하는 것은 러시아만이 아니다.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규범에 기초한 국제 질서가 다른 이도 아닌 그 질서를 고안하고 보증하는 이(미국)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과 트럼프 정부의 행동이 자유민주주의가 작동을 멈추는 '탈서구 질서(post-West order)'를 원하는 세력에 이용당할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기존 세계 질서를 불안정하게 재편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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