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얼음여왕? 무대 위 그녀는 엄마였다

조선일보
  • 김경은 기자
    입력 2018.06.11 03:00

    빅토리아 뮬로바&제네바 카메라타 내한 공연

    '얼음여왕'은 악보를 가지고 나와 악장에게 양해를 구한 뒤 보면대를 빌렸다. 앙코르로 연주한 곡은 '브라질(Brazil)'. 4년 전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온 세상이 정열의 나라에 빠졌을 때, 그녀가 아들에게 부탁해 탄생한 곡이다. '얼음여왕'은 넘치는 서정으로 아들 눈에 비친 브라질을 그려냈다. 감정을 좀체 싣지 않는 활 끝에 흥분과 사랑이 맺혔다.

    지난 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제네바 카메라타와 협연한 바이올리니스트 빅토리아 뮬로바(59)는 '완벽한 기교란 이런 것'임을 보여줬다.

    8일 공연에서 앙코르로 아들 미샤가 작곡한 '브라질'을 연주하고 있는 빅토리아 뮬로바.
    8일 공연에서 앙코르로 아들 미샤가 작곡한 '브라질'을 연주하고 있는 빅토리아 뮬로바. /크레디아
    연주곡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첫 소절부터 매혹적이라 어떻게 하면 도입부를 더 강렬하게 보일 수 있을까 연주자들을 고민에 빠트리는 곡이기도 하다. 뮬로바는 뜻밖의 해석을 선보였다. 줄 위에 활을 가볍게 대기만 하고 음표를 후루룩 삼키듯 부드럽게 소화해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운지로 음표를 조각해냈다. 줄 네 개를 한 번의 활 놀림으로 휘감을 땐 소름이 돋았다. 송진이 얼음 가루처럼 f홀 주위에 날렸다.

    냉전 시기 소련에서 태어나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명(名)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드 코간에게 배운 뮬로바는 스물한 살이던 1980년 핀란드 시벨리우스 콩쿠르와 1982년 소련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연달아 우승하며 '정경화를 이을 바이올리니스트'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이듬해 핀란드에서 택시를 타고 국경을 넘어 스웨덴으로 도망쳤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목숨을 건 탈출에 세계가 들썩였다.

    지독한 연습벌레였다. 항공 엔지니어였던 아버지와 전직 교사였던 어머니는 딸이 네 살 때부터 레슨을 받을 때마다 곁에서 지켜봤다. 친구도 없이 연습만 했던 뮬로바는 바이올린에 아무 재미도 느끼지 못했다. 억눌렸던 삶은 어린 뮬로바에게서 표정을 앗아갔다. '얼음여왕'은 그런 그녀에게 붙은 "아프고 뭉클한 별명"이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26세 연상의 명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와의 사이에서 아들 미샤 뮬로프아바도를 낳으면서 그녀는 전에 없던 웃음을 찾았다. 슬하에 이미 세 자녀를 뒀던 아바도는 반대했지만 소련에 가족을 두고 온 뮬로바는 간절히 아이를 원했다. 둘의 사랑은 5년 만에 끝났지만 아들은 곁에 남았고, 그녀의 음악은 기교에 연륜을 더하며 풍요로워졌다. 재즈 베이시스트로 활약 중인 미샤는 '브라질'을 쓴 작곡가다.

    뮬로바는 내년이면 아들과 단둘이서 전 세계를 돌며 'Music we love' 공연을 할 계획이다. 클래식은 물론이고, 클래식이 아닌 곡들도 다채롭게 섞어 들려준다. 한국 청중 앞에서 아들을 향한 사랑과 앞으로의 프로젝트를 미리 보여준 셈. 공연 날 아침 숙소 근처 선정릉을 거닐며 "자연의 기운을 듬뿍 받았다"는 뮬로바는 이튿날 일본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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