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밑지는 장사 않는 트럼프

입력 2018.06.11 03:12

조의준 워싱턴특파원
조의준 워싱턴특파원
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철저히 미국 처지에서 계산해보자. 미국의 첫째 원칙은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국 본토에 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그다음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현 상황에서라도 북한의 추가적 핵·미사일 개발을 막아 놓으면 미국으로선 한숨을 돌리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초 트위터에 "북한 미사일이 미국에 닿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도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아니라면 북핵 문제는 이렇게 심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속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현 국무장관도 지난 4월 "미국의 이익은 북한이 LA나 덴버 등으로 핵무기를 발사하는 것을 막는 데 있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관된 메시지는 '미국 본토부터 살리고 보겠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전에 이미 챙길 것은 다 챙긴 셈이다. 미국이 주장하는 '일괄 타결'이든 북한이 말하는 '단계적·동시적 타결'이든, 일단 북한은 미사일 시험과 개발을 멈췄다. 미군 지휘관들은 의회에서 "현재 북한이 가지고 있는 미사일은 모두 방어할 수 있다"고 수차례 말했다. 북한의 핵·미사일을 현 수준에 묶어두면 이미 갖춰진 미사일 방어망으로도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 시각)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을 만난 뒤 "천천히 갈 수도 있다"고 한 것은 미국이 더 이상 조바심을 낼 이유가 없다는 여유의 표현일 수 있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대외적 목표로 내걸고, 시간을 끌며 북한을 제어하면 1차 목표는 달성한 셈이기 때문이다.

내일 열리는 미·북 정상회담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단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을 '친구'로 부르며 비핵화 선언을 할 수도 있고, 협상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바로 정상회담장을 박차고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도 미국에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워싱턴 싱크탱크의 한 관계자는 "협상이 깨졌다고 북한이 바로 핵·미사일 추가 개발에 들어가면 미국이 제재 수위를 높일 뿐 아니라 실제 군사 행동 가능성도 급격히 높아질 것"이라며 "북한도 이 점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했다.

정상적 상황이라면 지금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협상하며 CVID 원칙에서 물러나지 않도록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눈은 북한과 종전 선언을 하는 데만 쏠려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가장 잃을 것 많은 한국이 안보에 절박하지 않다면, 잃을 것 없는 미국이 한국을 고려해줄 이유는 없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