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만류에도… 교육부, 실무 공무원까지 '적폐몰이'

입력 2018.06.09 03:00

국정교과서 추진 17명 수사 의뢰, 과장급 이하 실무자 6명도 포함
대입제도 등 本業은 하도급 주고 작년 하반기부터 적폐청산 매달려

교육부가 8일 박근혜 정부 당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추진한 전·현직 공무원(13명)과 민간인(4명) 등 17명을 직권 남용 등 혐의로 수사 의뢰하고, 현직 교육부 공무원 6명은 징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수사 의뢰된 전·현직 공무원 13명에는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 등 고위직뿐 아니라 과장급 이하 실무자 6명이 포함됐다.

현 정부 들어 전(前) 정권과 전전(前前) 정권 적폐를 청산한다는 이유로 정부 부처마다 현 정권에 우호적인 시민단체·노동계 인사 등을 주축으로 위원회를 발족시켜 공무원들을 고강도로 조사했다. 이에 대한 공직 사회 불만이 높아지자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 방침에 따랐을 뿐인 중·하위직 공직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날 교육부는 연구사를 비롯한 실무자까지 수사 의뢰하고 징계 대상에 올렸다.

그러자 교육부 공무원들 사이에선 "해도 너무한다"는 불만이 나왔다. 한 과장급 공무원은 "그 당시엔 지시에 따르지 않았으면 징계를 받았을 텐데 지금은 지시를 따랐다는 이유로 징계한다"면서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상관 지시를 성실히 이행한 공무원을 정권이 바뀌자 한순간에 적폐로 모는 것"이라고 했다.

교육부가 해야 할 일은 제쳐놓은 채 적폐 몰이에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작 자신들이 결정하고 책임져야 할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은 국가교육회의에 '하도급-재하도급 방식'으로 떠넘기고, 유치원·어린이집의 방과 후 영어 교육은 오락가락했으면서 전 정권 때 일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혹하게 조사해 처벌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서울 주요 대학의 대입 전형 기조를 '전화 한 통' 같은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바꾸도록 요구하는 등 번번이 물의를 일으켰다.

작년 7월 청와대가 임종석 비서실장 명의로 '적폐 청산 부처별 TF 구성 현황과 운용 계획을 회신하라'는 공문을 발송하면서 정부 부처들은 조직적으로 '적폐 청산' 활동에 들어갔다.

이때를 전후로 참여연대를 비롯한 각종 시민단체와 민변, 노동계 출신 인사들이 대거 적폐청산위에 들어가 공무원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올 1~4월 활동이 종료됐지만 2~3개월씩 거듭 연장하며 조사를 이어가는 위원회도 상당수다.

작년 11월부터 가동된 고용노동부의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당초 지난 4월 말 활동이 끝날 예정이었으나 오는 7월로 석 달 연장했다. 전교조·전공노에 대한 고용부의 법외 노조 판단,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근로자들에 대해 불법 파견이 아니라고 했던 근로 감독 결과 등 과거 정권이 추진한 총 15개 과제를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 이 중 전교조 법외 노조 부분은 이미 1·2심 재판부가 "고용부의 법외 노조 통보는 정당하다"고 판결한 것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지난 2015년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면 교원노조의 자주성을 해칠 수 있다"며 전교조 등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교원노조법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활동 기한을 연장한 고용부 위원회는 조사 대상 공무원들을 수시로 호출해 답변을 요구하고 서류·장부 제출 요구는 물론 고용부 전산 정보 시스템에 입력된 자료를 들여다볼 수 있는 권한까지 확보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위원회의 과도한 활동 때문에) 특히 공직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공무원들이 일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복지부동하는 경향이 심해졌다"며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다가 자칫 징계라도 받으면 공직 생활 오래하는 데 큰 지장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교육부처럼 고용부에 대해서도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과거 비리만 캔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당장 다음 달부터 주 52시간 근무시간 제도를 시행하는데도 고용부는 여태 '근로시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등에 대한 지침조차 못 내놓아 산업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법원 판결이 난 과거 정권의 비리를 재탕, 삼탕 식으로 털고 있다. 작년 11월 '해외 자원 개발 혁신 TF'를 구성해 에너지 공기업 3사의 해외 자원 개발 사업에 대한 실태 조사를 벌여 지난달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명박 정부의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은 이미 박근혜 정부 때 국정조사와 감사원 감사, 검찰 조사를 받았던 사안이다. 특히 산업부 TF는 무기한 활동 중이다. 한 관계자는 "애초에 기한을 정하고 시작한 게 아니었다.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다"고 했다.

산업부 중·하위직 공무원들은 반발하고 있다. "10년 전 일을 언제까지 뒤지겠다는 건지 답답하다" "자원 개발을 지시한 정책 결정자나 명백한 위법 행위를 한 사람에게만 죄를 물으면 되는데 마치 산업부 자원 개발 업무 자체를 적폐인 듯 취급하는 건 국익에도 안 좋다"는 말이 나온다. 산업부 관계자는 "MB 정부 당시 자원 개발 업무에 종사한 중간 이상 간부는 이미 부에 남아 있지도 않은데, 언제까지 그때 일로 조사를 받아야 하느냐"고 했다. '적폐 청산'을 한다면서 과거 정부 '주택 정책의 방향성'까지 공공연하게 비판했던 국토교통부 '관행혁신위원회'도 언제 활동이 끝날지 알 수 없다.

전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전모를 밝히겠다며 작년 7월 출범한 문체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는 이달 말쯤 수사 의뢰 대상 등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밖에 국방부와 보건복지부 등도 '적폐' 조사를 진행 중이다. 외교부와 환경부 등 부처는 작년 12월과 올해 5월 각각 활동을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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