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문이 지대로 터져버렸슈"… 입담 한번 질펀하네

조선일보
  • 정상혁 기자
    입력 2018.06.09 03:00

    놀러 가자고요

    놀러 가자고요

    김종광 소설집 | 작가정신 | 336쪽 | 1만3000원


    "신동엽이라고 알지?" "코미디언요?" "아니, 아니, 시 썼던 신동엽." 이 소설집은 대략 이런 식의 실없는 대화가 피식, 괄약근을 풀어지게 하는 근육 이완제라고 할 수 있다.

    "(소) 항문이 지대로 터져버렸슈. … 그리도 다행이네유." "염장 질러? 뭐가 다행이여?" "구제역은 아니니께유." 시골의 쇠락마저 충청도 사투리로 눙치며 슬픔의 똥구멍을 꿰매버리는 대바늘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데뷔 20주년을 맞은 저자가 8년 만에 선보이는 단편 9편 묶음. 저자의 고향에서 따 온 '범골'을 배경으로 한 농촌 소설이다. '김유정의 반어, 채만식의 풍자, 이문구의 입담'이라 출판사 측이 홍보하는 저자의 서사는 독특한 구성이나 복선 없이 인물의 걸쭉한 입담에 의지해 평면적으로 이어지는데, 그래서 이 일련의 웃기는 이야기는 소설보다 '썰'에 가까워 보인다. 다소 허술해 보이나, 부러 허술한 농촌의 내면을 외면화한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표제작은 "놀러 가자"며 버스 관광을 제안하는 마을 회장댁 사모님이 집마다 전화 돌리는 통화록이다. 몸도 성치 않고 걱정이 태산인 노인들과 나눈 잡담을 통해 이들의 소사(小史)를 드러낸다. 결국 각자의 이유로 놀러 못 가겠다는 사람이 많지만, 죽겠다고, 힘들다는 푸념이 태반이지만, 그 적당한 욕망과 갈등 덕분에 "그 말 많은 노인네들"은 결코 죽어 있지 않으며 하찮아 보이지 않는다.

    최근 소설 경향에 비춰봐도, 이 책은 말끔한 외출복 아닌 어딘가 좀 헐렁한 추리닝 같다. 모양새는 별로여도 마음 풀고 노는 데 이만한 게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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