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빨강머리 앤… 덕분에 '어른의 시간' 버텨

조선일보
  • 곽아람 기자
    입력 2018.06.09 03:00 | 수정 2018.06.09 04:56

    [YES24·조선일보 | 당신의 책꽂이가 궁금합니다]
    맹렬독자 1000명이 답했다, 어른 돼서도 못 잊는 어릴 적 그 책 11

    어린 시절의 독서는 세월이 지난 후에도 뇌리에 남아 힘겨운 '어른의 시간'을 버티게 하는 자양분이 된다. 'Books'가 인터넷 서점 예스24 플래티넘 회원(분기별 30만원 이상 책 구입)인 '맹렬독자' 1023명에게 물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잊히지 않는 '어릴 적 그 책'은?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친 데 대해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청한다. 나는 용서받을 만한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 이 모든 이유가 그래도 부족하다면, 이 어른이 전에 어린이로 있던 시절에 이 책을 바치고자 한다. 어른은 누구나 다 어린 시절을 거쳐온 것이다. (그러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바치는 글'을 고쳐 쓴다. '어린 시절의 레옹 베르트'에게."

    /일러스트=박상훈

    이 유명한 헌사로 시작하는 책이 '어린 시절을 거쳐온 어른'들에게 가장 잊히지 않는 책으로 꼽혔다. 221명의 선택을 받아 1위를 차지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작가가 2차 대전 중인 1943년 나치 정권을 피해 뉴욕에 망명 와 있으면서 쓴 책. 250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서 1억부 넘게 팔렸고, 매년 180만부 넘게 꾸준히 팔린다. "어릴 적엔 어린 왕자가 여우에게 하는 말과 행동에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가치관과 생각이 바뀐 뒤에는 새롭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특히 어린 왕자가 행성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여러 어른들을 보며 소름이 돋았다. 지금 내가 되려고 노력하는 어른이 바로 그 모습이었던 거다." 취업 준비생 전한솔(26)씨가 이 책을 고른 이유다.

    2위는 브라질 작가 주제 바스콘셀로스의 자전적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가족에게 학대당하는 5세 소년 제제는 마당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친구 삼아 대화하고, 이웃 아저씨 뽀르뚜가와 우정을 나누며 위로받는다. 6세 때 뽀르뚜가가 교통사고로 숨지자 철이 들어버린 제제는 48세 어른이 되어 말한다. "나의 사랑하는 뽀르뚜가, 제게 사랑을 가르쳐 주신 분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설문 응답자 강희정(43)씨는 "해피엔딩이 아닌 동화책은 처음이었다.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고 그 씁쓸한 여운이 오래간다"고 했다.

    3위에 오른 소녀들의 영원한 친구 '빨강머리 앤'은 천애 고아지만 특유의 낙천성으로 자신을 입양한 무뚝뚝한 남매 매슈와 머릴러를 사로잡는다. 친아버지 같던 매슈가 심장마비로 숨지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머릴러 곁에 남기로 결심한 앤은 말한다. "내가 퀸 학원을 졸업하고 나올 때는, 내 앞에 길이 똑바로 뚫려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굽어진 모퉁이에 온 거예요. 이 길이 굽어지고 나면,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는 없어요. 하지만 반드시 나는 좋은 것이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신명주(45)씨는 "늘 상상에 빠지는 아이였던 앤에게 동질감을 느꼈고, 시리즈의 뒤편까지 모두 읽어 보니 당시 캐나다의 생활상, 심지어 2차 대전 시기 영연방 후방의 모습까지 묘사돼 흥미로웠다"고 했다.

    4위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인간 왕자를 사랑해 목소리를 마녀에게 주고 인간이 된 인어공주는 결국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공기의 정령이 되고 만다. 5위는 애벌레들을 주인공으로 해 경쟁 사회를 빗댄 '꽃들에게 희망을'. 구향미(36)씨는 "'남을 밟고 올라간대도 올라가면 또 다른 경쟁이 있으니 너무 치열하게 살지 말자'는 걸 어릴 때 느꼈다"고 했다. '신데렐라'와 '이솝우화'가 이 책과 나란히 공동 5위다.

    이 밖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8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9위, '플랜더스의 개'가 10위, '소공녀'가 11위에 올랐다. '소공녀'를 택한 박은진(42)씨는 말했다. "불운한 환경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삶을 대하는 자세, 늘 가지고 있던 착한 심성과 희망이 어린 내가 봐도 특별했고 부러웠다. 늘 어려운 순간마다 세라를 떠올렸다. 세라라면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했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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