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엔 영감, 탐험가엔 도전… 등대는 빛이었다

조선일보
  • 이한수 기자
    입력 2018.06.09 03:00

    현존 最古는 헤라클레스 등대, 탐험가 콜럼버스 삼촌은 등대지기
    기원전 세운 알렉산드리아 등대… 등대를 통해 읽는 인류 문명사

    등대의 세계사

    등대의 세계사

    주강현 지음 | 서해문집 | 376쪽 | 2만원

    우리 사는 행성은 차라리 수구(水球) 또는 해구(海球)라 불러야 옳다. 바다가 지구 표면 70%를 차지한다. 그 옛날 항해에 나선 바다 사나이는 어두운 밤 별빛을 따르며 마음 졸이다 멀리 땅에서 오는 한 줄기 불빛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등대가 언제 생겼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항해의 역사와 비슷할 것으로 짐작된다. 해안 마을의 불빛, 절에 밝힌 석등도 갈 길을 알려주는 표지 역할을 했다.

    등대를 통해 읽는 인류 문명사다. 관련 문헌을 두루 섭렵하고 세계 곳곳 주요 등대를 찾아 사진을 찍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길어올렸다. 제주대 석좌교수인 저자는 '환동해 문명사' '적도의 침묵' 등 해양 문명사 연구에 독보적 업적을 쌓아온 인문학자다.

    현존 가장 오래된 등대는 스페인 북서 해안 라코루냐에 있는 헤라클레스 등대다. 서기 1~2세기 로마 시대에 세워졌다. 1900년 세월 동안 몇 차례 개축했으나 처음 세운 로마 건축가(가이우스 세비우스 루프스) 이름이 벽면에 새겨져 있다. 기원전 62년 카이사르가 이곳을 정벌한 후 등대는 로마 제국 선단(船團)이 영국·아일랜드로 가는 길목을 밝혔다. 로마의 대서양 진출을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등대는 예술가에게도 영감을 줬다. 스페인 남부 출신으로 라코루냐 예술학교를 다닌 소년 파블로 피카소는 헤라클레스 등대가 서 있는 해변을 거닐며 예술혼을 꽃피웠다. 등대 있는 풍경을 그린 초기 작품이 있다.

    물론 이전에도 등대는 있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파로스 등대는 14세기 지진으로 무너지기 전까지 1500년간 지중해를 밝혔다. 높이 120m 로 40층 건물 규모였다. 낮에는 햇빛을 거울로 반사하고 밤에는 장작을 때워 불을 밝혔다 한다. 1325년 이슬람 탐험가 이븐바투타가 지진에 무너진 파로스 등대를 보고 기록을 남겼다. 1994년 수중 고고학 발굴대는 이 등대 유적을 찾아냈다.

    이탈리아 제노바엔 1128년 점등한 란테르나 등대가 있다. 제노바는 베네치아와 함께 중세 지중해 패권을 다툰 해양 세력이었다. 당대 제노바의 무역 수입은 프랑스 왕국 전체 세입의 3배였다고 한다. 신대륙을 찾은 콜럼버스 고향이 제노바다. 1449년 란테르나 등대 책임자는 콜럼버스의 삼촌 안토니오 콜롬보였다. 콜럼버스 집안이 바다 일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탐험가 콜럼버스가 태어난 토양이 있었던 것이다. 등대 가까운 구도심에 콜럼버스 생가가 있다. 란테르나 등대는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엄마 찾아 삼만리'는 19세기 제노바가 배경이다. 아르헨티나로 돈 벌러 떠난 엄마를 그리며 주인공 마르코가 앉아 있던 곳이 란테르나 등대였다.

    바이킹과 한자동맹 상인이 활약한 북해와 발트해 연안, 대항해 시대 스페인과 포르투갈,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이룬 영국, 해양 실크로드를 밝힌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에 이르기까지 등대를 통해 종횡무진 세계사를 누빈다.

    그저 역사만이 아니다. 등대는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정치적 메타포를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시절 갈 길을 밝힐 등대는 어디에 있을까 같은 은유. 책 속 여러 등대 사진이 기묘한 울림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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