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정치] '제 발등' 찍은 통계청 조사

입력 2018.06.09 03:15

홍영림 여론조사전문기자
홍영림 여론조사전문기자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의 효과 파악을 위해 (2018년부터 폐지하려던) 가계 동향 조사를 실시합시다."

작년 11월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던진 제안이다. 정병국 의원(바른미래당)은 이에 "이 통계가 나오면 소득 주도 성장이 허구란 게 드러난다. 오히려 여당이 작살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정우 의원(민주당)은 "정부 정책 효과는 항상 이슈가 되는 것 아니냐. 그걸 통계로 보여줘야 한다"며 밀어붙였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통계청의 가계 동향 조사는 결국 부활했다. 설문조사 방식인 이 가계 동향 조사는 단점이 몇 개 있다. 접근하기 어려운 고소득층 표본 누락이 많은 데다 응답 거부율이 높아(약 25%) 소득 불평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래서 국세청 납세 자료 등을 활용해 매년 연말 발표 통계로 대체하려 했으나 현 정부의 간판 정책인 소득 주도 성장의 실적을 연중 여러 번 과시(誇示)하기 위해 분기별 발표 자료로 이날 되살아난 것이다.

하지만 정부·여당의 의도와 정반대로 올 1분기 가계 동향 조사에서 소득 분배는 최악임이 드러났다. 그러자 청와대는 최저임금 인상의 직접 피해자인 영세 자영업자와 실직자를 조사 대상에서 빼고 임금 근로자 소득만 추린 통계를 갖고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 효과가 90%"라고 강변했다.

이는 가장 흔한 통계 조작 또는 오류인 '표본 집단의 편의적 선택'에 해당한다. 청와대는 "'소득 주도 성장이 실패'라는 진단은 성급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더 성급한 것은 정부·여당이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올 1분기부터 홍보하기 위해 가계 동향 조사를 불쑥 되살렸다가 제 발등을 찍었기 때문이다. 그러고선 입맛에 맞게 꿰맞춘 통계로 다시 홍보에 나섰다. 전형적인 보여주기식(式) '홍보 강박증' 사례이다.

지난달 한국갤럽이 실시한 조사에선 '앞으로 실업자가 증가할 것'으로 대답한 사람이 전체 응답자의 42%였다. '비슷할 것'(29%)을 포함하면 실업자가 줄지 않을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71%에 달했다. 정부·여당은 이 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 78%만 눈여겨봤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지지자 중에서도 실업 문제를 어둡게 전망한 응답자가 66%나 됐다. 실업 등 경제 문제가 호전되지 않는다면 대통령 지지율도 하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독일 통계학자 디터 호흐슈태터는 저서 '통계 기법학'에서 "숫자를 조작하는 이들 중에는 '바보'와 '악당' 두 부류가 있다"고 했다. 그는 "바보는 통계 기법을 몰라서 그릇된 자료를 작성하고, 악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통계를 악용한다"고 했다. 정책 담당자가 바보와 악당 어느 쪽에 속하든, 가장 불행한 당사자는 국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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