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못 보는 남자와 못 걷는 여자의 유쾌한 유럽 여행기

입력 2018.06.10 06:40

전동휠체어가 아니면 혼자서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전신장애 여자, 그리고 그 여자 옆에 서 있는 1급 시각장애 남자. 이 두 남녀가 단둘만의 유쾌한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제삼열(33)·윤현희(35) 부부 이야기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오는 유럽 여행, 그게 뭐?”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천성 녹내장으로 1급 시각장애인이 된 제삼열씨와 전동휠체어가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는 1급 전신지체장애 윤현희씨 부부에게 열흘간의 유럽 여행은 그저 쉬고 즐기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진정한 모험이고 도전이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세상이 캄캄하게만 보이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오로지 케인(시각장애인용 흰색 지팡이)에 의지해 조심스레 한 발짝 한발짝을 내디뎌야 하는 제삼열씨와 무게만 200㎏에 이르는 전동휠체어를 다리 삼아 움직여야 하는 윤현희씨 부부에게 집 밖을 나선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많은 불편과 위험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말도 통하지 않는 유럽이었다. 더구나 이동과 안내를 위한 전용 자동차는 고사하고 지하철과 버스, 기차와 택시, 비행기 등 오로지 대중교통만을 이용해 영국과 프랑스 구석구석을 누볐기에 부부에게 이번 여행은 그 자체로 위험스러운 도전이자 짜릿한 모험일 수밖에 없었다.

부부는 최근 자신들의 유럽 여행 이야기를 토대로 ‘낯선 여행, 떠날 자유’라는 책을 썼다. 지난 5월 31일 서울 강남구 자곡동의 한 카페에서 이들 부부를 만났다. 1급 시각장애와 1급 전신지체장애를 가진 이들 부부는 왜 하필 먼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을까.

영국 런던 피카디리서커스에서 공연하던 이들과 함께. photo 제삼열·윤현희

우선 부부는 여행을 좋아했다. 장애로 이동이 불편하긴 했지만 한국의 많은 곳을 다녔다. 그렇게 여행을 다니다 보니 문득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삼열씨는“우리는 아직 차가 없다”며 “아내의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KTX나 기차가 가는 곳, 또 저상버스와 장애인 콜택시가 있는 곳으로만 여행을 다닐 수 있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갔던 곳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부부의 여행. 어느날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외국으로 떠나볼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제씨는 “문득 ‘바다 건너 외국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가 궁금했다”고 했다. 부부는 그렇게 첫 해외 여행을 준비했다. 처음에는 가까운 일본을 떠올렸다. 제씨는 “그런데 아내가 대학 때 일본을 다녀온 경험이 있었다”며 “미국이나 유럽 중 문학과 미술작품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유럽, 그중에서 영국과 프랑스를 첫 해외 여행지로 택했다”고 했다.

호텔 예약에만 2주가 걸리다

이들의 유럽 여행은 준비부터 쉽지 않았다. 호텔 예약부터 일반 사람들은 생각지 못할 난관에 부딪혔다. 윤현희씨는 “장애인 시설이 있거나 최소한 휠체어가 움직일 수 있도록 계단이 많지 않고 문턱 없는 방이 있는 호텔만 이용할 수 있다”며“인터넷은 물론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방법으로 호텔 예약에만 2주가 걸렸다”고 했다.

부부에게 “여행 프로그램이 짜여 있는 유럽 패키지 여행이나 장애인 전문 여행사를 통했다면 좀 더 쉬운 여행이 되지 않았겠느냐”고 묻자, 부부는 “사실 첫 해외 여행이라 처음에는 패키지 여행부터 생각했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애초 이들 부부를 위한 패키지 여행이라는 건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일반인을 위한 패키지 여행은 있지만 우리처럼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을 위한 패키지 여행은 없었어요. 문의를 하니 여행사에서 힘들다는 분위기였습니다. 장애인 전문 여행사도 사정이 비슷했어요.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정도는 장애인 전문 여행사를 통해 떠날 수 있지만 유럽은 힘들다는 반응이었어요. 오히려 저희에게 ‘유럽에 다녀오시면 우리에게 호텔이며 이동수단 같은 정보를 부탁’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부부는 첫 유럽 여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갔다. 그리고 떠난 유럽 여행은 부부에게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제씨는 “사실 유럽으로 간다고 마음먹었을 때 조금은 불편할 것으로 생각했었다”며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이는 한국보다 느린 사회이고, 길도 좁고, 교통수단 같은 공공시설들도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어 걱정이 앞섰다”고 했다.

서울 장애인택시와 런던 블랙캡

하지만 여행 첫날부터 그들의 여행은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의 연속이었다. 첫 여행지인 영국 런던. 윤씨의 전동휠체어 배터리가 바닥을 드러내는 상황이라 충전을 위해 호텔로 가야 했다. 당장 택시를 잡아야 했다. 서울에서의 익숙한 경험 때문에 불안과 걱정이 먼저 앞섰다. 윤씨의 말이다.

“서울에서 전동휠체어를 타는 전신지체장애인은 장거리 이동을 위해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숫자가 너무 적습니다. 한번 호출하면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빠르면 30분, 2~3시간을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일 때가 비일비재하죠. 물론 이것을 기다릴 수 없다면 휠체어 탑승 공간이 있는 저상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사실 휠체어 탑승 공간이 있는 저상버스는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 하는 것보다 더 힘들 때가 부지기수입니다. 숫자가 매우 적은 것은 물론이고 빠듯한 배차시간 때문인지, 장애인을 위해 도입한 교통수단임에도 장애인을 발견하면 오히려 그냥 지나가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사실입니다. 전신지체장애인이 (수많은 계단과 휠체어 탑승 공간조차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지하철을 이용하기란 더 힘이 든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유럽에서 만난 대중교통은 이들의 불안과 걱정을 보기 좋게 날려주었다. 영국 런던 어느 길 위에서 손을 흔들자 멀리서 보고 달려온 ‘블랙캡’(런던의 택시)이 그들 앞에 멈췄다. 윤씨는 “서울에서처럼 혹시 우리가 귀찮을 수도 있을텐데 그냥 지나쳐버리면 어쩌나 긴장됐다”며 “그런데 기사가 저를 보더니 차에서 바로 내려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고 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전동휠체어가 뒷좌석에 편히 올라갈 수 있도록 아예 택시 시동을 끄고 경사로를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경사로 각도가 가팔라서였는지 부족한 배터리 때문인지 윤씨의 전동휠체어가 택시 뒷좌석에 잘 오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자 택시기사가 재빨리 트렁크에서 경사로를 하나 더 꺼내와 윤씨가 더 쉽게 뒷좌석에 오를 수 있게 전보다 더 완만한 각도로 경사를 만들어주기까지 했다. 불안과 걱정으로 런던의 택시를 멈춰 세웠던 부부에게 런던 택시기사가 보여줬던 이 모습은 쉽게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고 했다. 윤현희씨는 “그 택시기사만이 아니었다”며 “영국에서 만난 택시기사들 모두 장애인용 택시가 아닌 일반 택시였음에도 저희가 승차를 원할 때 기꺼이 장애인인 저희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편의를 제공해주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좌)영국 시외버스에 마련된 휠체어 좌석에서 안전벨트까지 맨 윤현희씨.(우)영국 시외버스 기사가 휠체어 탑승이 가능하도록 경사로를 펴고 있다.

"모두 예외 없이 기다려줬다"

시각장애인인 제삼열씨도 “사소한 것이지만 한국에서는 뭐가 그리 급한지 다들 달려들듯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거나 뛰어내려 위험한 적이 많았다”며 “그런데 유럽 여행 중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는, 장애로 빠르게 움직일 수 없는 저희가 타고 내릴 때까지 모두가 예외 없이 기다려줬다”고 했다.
부부는 “유럽 사회는 모든 것을 경쟁하듯 빠르게 움직이는 한국 사회보다 느리고 단순했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유럽에서 경험한 느림과 단순함은 그냥 느리고 단순한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불편한 이들을 배려하는 느림과 단순함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부부는 여행 중 장애를 바라보는 유럽과 한국의 서로 다른 시선도 느꼈다고 했다. 한국은 여전히 장애를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인 게 현실이다. 그 부담스러운 시선이 때때로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아픔이 될 수도 있다. 거리를 걷는 장애인을 힐긋 쳐다보거나, 오랫동안 측은한 듯 부담스럽게 주목하는 시선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부부가 만난 유럽, 그 유럽에서 1급 장애인인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한국과 달랐다고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행 기간 내내 유럽인들이 부부에게 보낸 시선은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는 멋진 청춘으로 바라봐주는 것이었다고 했다.

“영국 지하철에서 교통카드를 만들 때였다”며 윤씨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중교통으로 여행을 계획했기 때문에 저희가 교통카드부터 만들어야 했어요. 그런데 이걸 잘 못 만들고 있어서 그랬는지 지하철 역무원이 오더니 웃으며 ‘외국인이라 어려울 수 있다’면서 이것저것 도와주는 겁니다. 그리고는 우리 관계를 묻는 겁니다. ‘부부’라고 하자, 역무원이 호들갑스럽게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이렇게 멋진 남편이 있어 행복하겠다’고 말하는 겁니다.”

윤현희씨는 그 순간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사실 대학에서 만나 결혼한 저희 부부에게 향했던 시선 중 가장 흔한 것이 ‘너희 잘 살 수 있겠니’나 ‘축하하지만 걱정되는 게 사실이야’라는 종류의 걱정들이었지요. 그런데 여행에서 만난 유럽인들은 저희를 향해 ‘힘들겠다’ ‘잘 할 수 있겠니’ 같은 시선을 보내지 않았어요. 걱정이나 안타까움 대신 ‘너희 참 멋지게 산다’거나 아니면 ‘그냥 여행 왔니’ 정도였어요.”

“너희 참 멋지게 산다”는 말 한마디

제삼열씨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만난 유럽인들의 이 같은 시선을 “고마운 무관심이자 따뜻한 배려였던 것 같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하며 윤씨는 “첫 유럽 여행이라 그랬는지 현지 유럽인들보다 내가 현지인들을 더 신기한 시선으로 오래 쳐다볼 때가 많았다”며 웃었다.

부부는 영국과 프랑스인들이 보여준 장애에 대한 인식을 언젠가는 한국 사회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시각장애인인 남편이 급하게 화장실을 찾을 때 선뜻 나서 손을 잡고 직접 화장실까지 안내해준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 한 카페의 건장한 청년, 전신지체 장애인인 부인이 안전하게 탈 때까지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려 편히 탔음을 확인한 후에야 웃으며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던 영국의 택시와 버스기사들의 모습을 부부는 한국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만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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