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난다" 고려인, 시집 낼 수 있게 돼

입력 2018.06.08 11:20

고려인마을 제공 이경일 디자인하우스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가 김블라지미르씨(왼쪽에서 두번째)의 두번째 시집의 출간을 무상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지난 7일 고려인마을지원센터에서 가진 자리에서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
디자인하우스 이경일 대표 “출판무상지원”
일반인들도 사연 접하고 100여만원 보태
김블라지미르씨, 두번째 시집 출간 가능
광주광역시=권경안 기자

조국의 품안에 돌아왔지만, 교수에서 노동자가 된 시인 김블라지미르씨. 그에게 기쁜 소식이 왔다. 고려인의 애환을 담은 시집(詩集)의 출간에 필요한 비용을 한 출판사 대표가 후원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출판사 디자인하우스(서울 강남구 논현로) 이경일 대표가 오는 7월 초순까지 김 시인의 시집출판을 무상으로 모두 지원하고, 저작권을 포함한 권한을 고려인마을에 부여키로 했다고 이천영 목사(고려인마을 공동대표)가 8일 전해왔다.

이 대표는 지난 7일 광주고려인마을에 찾아와 김 시인에게 출판후원의 뜻을 전하고, 출판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김 시인이 지난해 첫 시집 ‘광주에 내린 첫눈’에 이어 두번째 발행할 시집은 잠정적으로 ‘회상열차안에서’라고 이름지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표는 “시집이 출간되면 서울이나 광주에서 출판기념회 또는 북콘서트를 갖자”고 제안했다. 김 시인은 “뜻밖의 선물에 눈물이 난다”며 “도움을 주신 이 대표를 비롯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출판후원에는 이 대표뿐 아니라 사연을 접한 일반인들도 힘을 보탰다.

이천영 목사는 “지난달 31일 고려인들의 소식을 전하는 나눔방송을 통해 처음 알려졌고, 이어 지난 4일 조선일보(조선닷컴)가 ‘교수서 노동자 된 고려인, 시를 쓰다’를 통해 사연이 알려진 직후, 독자들이 100여만원의 후원금을 보내온 데 이어, 이 대표가 무상 출판지원의 뜻을 역시 전해왔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지금 고려인마을(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에서 살고 있다. 지난 2012년 조국(祖國)의 품에 안겼다. 광주에는 이듬해 왔다. 지난 1956년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에서 태어난 그는 타쉬켄트 문학대학과 의학대학에서 러시아문학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일용직 노동자로 생활하고 있다.

‘사람들은 말하지, 내가 아버지를 꼭 닮았다고/…/당신이 노래를 부르면 모두들 숨을 죽였지/멀리 어딘가에 있는 고향에 대한 노랠 부를 때면/…/눈이 붓도록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나는 보았지/…/아버지의 나라에 살고 있어 나는 행복하다네/그 때 울던 분들의 눈물을 이해한다네/그분들께 한반도는 바로 기억이자 사랑이었음을’(‘사람들은 말하지’)

러시아 연해주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당한 고려인의 2세. 그의 가슴속에는 아버지, 어머니의 한(恨)이 깊게 새겨져 있다. 그 한은 전체 고려인의 것이기도 하다. 이산인(離散人,디아스포라)의 아픔이 시작품 전편에 흐른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나는 창밖을 보네/숲속의 풀, 자작나무, 포플러…/나는 알고 있네, 부모님이 꾸셨던 꿈을/그것은 단 한 번만이라도 조국 땅을 밟는 것’(‘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경로를 따라서’)

아버지를 닮았다는 그가 아버지 대신 조국 땅을 밟았다. 그리고 강제이주 80년을 맏은 지난해엔 아버지, 어머니가 이주당했던 그 길을 따라가 보기도 했다.

두번째 시집에 수록되는 시들은 김병학 시인이 번역했다. 김 시인은 1992년 카자흐스탄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한글학교장, 현지 신문기자 등으로 활동한 바 있다. 그는 고려인들의 역사와 애환을 기록해오고 있다. 그는 “때로는 세련되고 때로는 소박한 김 시인의 눈과 마음의 창을 통해 한국에 사는 고려인들이 느끼는 복잡한 속내와 애환, 조상들에 대한 자부심, 중앙아시아에 대한 생래적 애착 등 여러 속살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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