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려 기다리다 공격하는 게 러시아의 대외정책"

조선일보
  • 이선민 선임기자
    입력 2018.06.08 03:00

    김용구 한림대 한림과학원장 '러시아의 만주·한반도…' 펴내
    17년만에 한국외교사 5부작 완간 "한국, 변두리 사고서 벗어나야"

    학술원 회원인 김용구(81) 한림대 한림과학원장(서울대 명예교수)이 개항기 한국외교사 5부작의 마지막인 '러시아의 만주·한반도 정책사, 17~19세기'(푸른역사)를 펴냈다. 김 교수는 2001년 '세계관 충돌과 한말외교사, 1866~1882'를 시작으로 '임오군란과 갑신정변'(2004년), '거문도와 블라디보스토크'(2009년), '약탈제국주의와 한반도'(2013년) 등 근대 세계 질서에 편입된 19세기 후반 한국의 대외관계사를 세계사적 관점에서 조명하는 책을 출간해왔다.

    "19세기 중반 조선과 국경을 접하게 되면서 한반도에 큰 영향을 미친 러시아의 독특한 국제정치적 행동 양태에 주목했다. 유럽에 대해서는 동경과 증오의 이중 감정을 지니면서 아시아는 멸시했던 슬라브적 외교 행태는 러시아의 동진(東進) 이후 청·조선 정책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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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정동 옛 러시아 공사관 앞에 선 김용구 교수. 김 교수는 “서유럽 국가들에선 찾아볼 수 없는 러시아의 특수한 행태가 시베리아·만주·한반도에서 어떻게 전개됐는지 밝히려고 했다”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동유럽의 변방 국가였던 모스크바 공국(公國)이 16세기 말 우랄산맥을 넘어 시베리아를 침략한 것은 경제적 동기였다. 당시 모피 열풍이 서유럽을 휩쓸자 담비의 보고(寶庫)인 시베리아에 욕심을 낸 것이다. 원정대는 닥치는 대로 원주민을 약탈하고 학살하면서 만주 흑룡강에 이르렀다. 이 지역을 관할하던 청나라 군대와 잇달아 전투를 벌인 뒤 두 나라는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국경을 정했다. 이 과정에서 두 차례 청의 요청으로 지원군을 파견한 조선은 러시아의 존재를 알게 됐다.

    국경 부근 캬흐타 교역으로 경제적 이익을 누리던 러시아는 아편전쟁 이후 영국이 중국에 진출하면서 청과의 교역이 쇠퇴하자 영토 점령으로 정책을 선회했다. 청나라가 영국·프랑스와 전쟁을 벌이는 틈을 타서 연해주를 장악했다. 그 결과 조선 영토인 두만강 하구 녹둔도가 러시아로 넘어갔다. 하지만 차지한 땅을 개발할 역량이 없었던 러시아는 '기다리는 정책'을 견지하며 현상을 유지했다. 1891년 시베리아 철도가 착공되고 황태자 시절 아시아를 순방하며 극동의 중요성에 눈을 뜬 니콜라이 2세가 1894년 즉위하면서 연해주 개발이 본격화되고 한반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니콜라이 2세의 측근 베조브라조프는 조선 정부에서 얻어낸 압록강 삼림 벌채권을 기반으로 조선 북부를 병합하여 '러시아의 고리'로 만들 것을 주장했다. 그는 만주를 중시한 위테 재무장관과의 정치 투쟁에서 패배했고 러시아는 러일전쟁에서 패전하면서 한반도에서 밀려났다. 김용구 교수는 "자신의 힘이 모자라면 엎드려 기다리지만 상대방이 약하다고 판단되면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러시아의 행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양 정치사상, 공산주의 국제법, 소련 외교정책사를 공부하던 김용구 교수는 예순이 넘어 한국외교사 연구로 돌아왔다. 그리고 미·영·불·러·중·일의 한국 관련 근대 외교문서에 파묻혀 20년을 보냈다. 19세기 후반 한국외교사에 비추어 오늘의 한반도와 한국의 대외관계를 보면 어떨까? 김 교수는 "우선 한반도에 특수한 이해관계를 가진 중국·일본·러시아의 리더십이 19세기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큰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한국도 19세기 말에 형성된 '오지(奧地) 사고' '변경(邊境) 사고'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이제는 강대국 관점을 맹목적으로 수용하거나 폐쇄적 민족주의에 얽매이지 말고 우리 눈으로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구 교수는 우리 학계가 세계의 흐름에 뒤처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중국·일본이 방대한 외교사 자료를 계속 편찬하는 데 비해 우리는 기초 자료 정리가 부족하고 외국어 능력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후학들이 내 저서를 딛고 서서 고쳐주는 연구서를 내놓으며 다른 나라 학자들과 경쟁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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