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사다트, '主敵'과 손잡은 이유

입력 2018.06.08 03:14 | 수정 2018.06.08 21:51

노석조 국제부 기자
노석조 국제부 기자

"이런 유대인 같은 놈!"

아랍권에서 가장 심한 욕이다. 당나귀·개 같은 짐승에 빗댄 욕보다 더 세다.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과 전쟁을 4차례나 치르고 판판이 졌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집트에서 주적(主敵) 이스라엘은 어떻게든 싸워 무너뜨려야 할 대상이었지 대화의 대상이 아니었다. 1970년 대통령에 취임한 사다트는 전임인 나세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강경 정책을 밀어붙였다. 군비를 증강하고 전쟁 준비에 올인했다. 당시 이집트 인구는 3500만명, 이스라엘은 290만명이었다. 최신 무기로 무장하고 전술만 잘 짜면 이길 수 있다고 봤다.

1979년 3월 26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안와르 알 사다트(왼쪽) 이집트 대통령, 지미 카터(가운데) 미국 대통령, 베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손을 잡고 기뻐하고 있다. /더타임스 오브 이스라엘
그랬던 사다트가 1977년 11월 19일 '주적'을 찾아갔다. 사다트가 텔아비브 벤구리온공항에 도착하자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는 군 의장대 사열로 맞이했다. 두 정상의 만남에 세계는 경악했고, 감동했다. 사다트는 이스라엘 의회를 찾아 연설했다. 아랍 지도자로서 처음이었다. "나는 오늘 굳은 의지로 여러분께 왔습니다. 새 삶을 만들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화해 무드는 급물살을 탔다. 이듬해 사다트와 베긴은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의 중재로 '캠프 데이비드 협정'에 사인했다. 사실상의 종전 선언이었다. 그해 사다트와 베긴은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1979년 양국은 '평화 조약'을 맺었다.

안와르 알 사다트(왼쪽) 이집트 대통령이 1977년 11월 이스라엘에서 베나헴 베긴(오른쪽) 총리를 만나 인사하고 있다. /더타임스 오브 이스라엘
사다트는 어쩌다 이스라엘의 적에서 친구로 '전향'한 걸까? 이스라엘이 갑자기 좋아져서가 아니다. 이집트가 군사적으로 이스라엘을 따라갈 수 없음을 깨달아서다. 전쟁을 포기했기 때문에 대화에 나섰다는 것이다. 계기는 1973년 4차 중동 전쟁이다. 사다트는 소련의 지원까지 등에 업고 야심 차게 이스라엘을 침공했지만 결국 패했다. 5차 전쟁으로 설욕도 고려했지만 승산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첩보도 들어왔다. 국고는 바닥났고 생활고에 빠진 국민의 원성은 날로 커졌다. 사다트는 국정 책임자로서 이스라엘과 소모적인 대치 상황을 끝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했던 것이다. 이런 속사정을 간파한 베긴이 그의 체면을 살려주며 모양 좋게 1977년 "이스라엘에 와주시오"라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사다트는 평화 조약 체결 2년 뒤인 1981년 암살됐다. 반(反)이스라엘 이슬람극단주의 세력의 소행이었다. 2012년엔 이집트에 반이스라엘 강경 이슬람주의 정권이 들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양국의 평화 조약은 39년이 지난 지금까지 준수되고 있다.

이유는? 여전히 이스라엘의 국방력이 이집트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군(强軍)은 협상력이자 협상 결과를 지탱하는 힘이다. 북핵 협상을 위해서도, 훗날을 위해서도 대한민국군이 강군이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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