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이 골목에서 무슨 수로 장사해서 먹고살까?

조선일보
  • 이진석 논설위원
    입력 2018.06.08 03:15

    日·中의 샌드위치 협공… 이 악물고 이겨온 한국
    "이젠 쉬면서 나눠 먹자" 정말 여기서 멈추려나?

    이진석 논설위원
    이진석 논설위원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시작될 무렵 재정경제부에 이런 조크(joke)가 돌았다. 어느 골목에 가게 3곳이 나란히 붙어 있었는데 왼쪽 가게가 '최고의 품질'이라는 간판을 걸자, 오른쪽 가게는 '최저 가격 보장'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두 가게 사이에 끼어 있는 가운데 가게는 품질도, 가격도 어중간했다. 가게 주인은 궁리 끝에 '입구(入口)'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손님들이 저기가 입구인 모양이구나 생각하고 가운데 가게로 몰려 대박이 났다는 것이다.

    당시 재경부 2차관이었던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밥자리마다 꺼내던 얘기다. 둘러앉은 사람들이 한바탕 웃고 나면 그는 "눈치 챘겠지만 왼쪽 가게는 일본, 오른쪽 가게는 중국이다. 가운데 가게는 뻔하지 않으냐"고 했다. "이 골목에서 중국, 일본이 못하는 미국과의 FTA 체결로 미국 시장으로 고속도로를 뚫어야 한다. 그래야 '입구'라는 간판을 달 수 있다"고 했다. 당시에는 한·미 FTA가 체결되면 무슨 재앙이나 닥칠 것처럼 굴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컸다. 의료시장 개방으로 맹장수술비가 900만원으로 뛴다고 했다. 볼리비아는 미국과 FTA 체결 후 상수도 민영화로 수돗물 값이 치솟아 빗물을 받아서 쓴다는 괴담까지 돌았다. 그러나 한·미 FTA 이후 5년간 대미 수출은 그 이전 5년에 비해 연평균 184억달러 늘었다.

    얼마 전 그를 만났더니 10년 넘은 '세 가게'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이 골목에서 가장 싼 물건을 판다던 중국은 기술력을 키웠고, 물건값 비싸다던 일본은 엔저(円低)를 만들어냈다. 이러면 무슨 수로 장사해서 먹고살지 모르겠다. 이보다 큰일이 있느냐"고 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는 중국산(産)보다 가격이 높고, 일본에는 품질이 좀 못 미쳐 그 가운데에 끼여 협공(挾攻)당하는 샌드위치 신세가 될 것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그 틈을 비집고 살 길을 뚫어왔다. '국내 지형에 강하다'고 선전했던 애니콜은 글로벌 1위 갤럭시로 변신했고, 일본 공장을 견학하면서 곁눈질하던 반도체는 세계 1위로 올라섰다. 미국에는 수출하지도 못했던 포니는 쏘나타, 제네시스로 업그레이드했다.

    이만하면 허리를 펼까 했는데 세상이 그럴 리 없다. 중국은 덜미를 잡으려고 하고, 일본의 뒷모습은 멀어진다. 며칠 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 법인에 반(反)독점국 조사관들이 담합 혐의가 있다면서 들이닥쳤다고 한다. 두 회사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75%를 장악하고 있다. 2025년 자급률 70%를 목표로 '반도체 굴기(�起)'에 나선 중국 정부가 두 회사를 노골적으로 견제하고 있다. 중국 공업신식화부는 1년6개월 전부터 LG화학 등 한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는 보조금 지급을 중단, 판로를 막고 있다. 소니, 파나소닉이 재기하고, 일본 기업들은 2년째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가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쉬엄쉬엄하자고 한다. 진열대에 있는 과자 봉지들 꺼내서 나눠 먹자고 한다. 최저임금이 1만원은 돼야 한다고 하고, 근로 시간도 줄이자고 한다. 곧 남북 경제 협력으로 경제도 살아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이러다 가게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소리는 듣기 어렵다. 도요타 임원들은 현대자동차가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 10년이 지났을 무렵까지도 깔봤다. "현대의 경쟁 상대는 신형 도요타가 아니라 중고 도요타"라고 했다. 한국은 그쯤이라고 했지만, 이를 악물고 이겨냈다. 여기서 멈추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