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기저귀 교환대 없는 화장실, 아기 엄마의 '진땀'

조선일보
  • 이주윤·작가
    입력 2018.06.08 03:00 | 수정 2018.06.08 05:12

    [가자, 달달술집으로]

    가자 달달술집으로
    카페에 앉아 글 쓰는 시늉을 하며 커피 석 잔을 홀짝홀짝 마셨더니만 갑자기 볼일이 다급해져 화장실에 후다닥 뛰어갔다. 칸이 하나뿐인 그곳에는 네댓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애가 나보다 먼저 들어와 있었는데, 그 애는 치마를 허리까지 끌어올린 채 다리를 배배 꼬며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중이었다. 빈칸인 것 같은데 왜 저러고 있대? 고개를 빼꼼 내밀어 칸막이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한 뼘쯤 벌어진 문틈 사이로 녀석의 엄마인 듯싶은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허리를 수그리고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그녀의 엉덩이가 연신 씰룩거렸다. 인기척을 느낀 그녀는 혼잣말을 중얼댔다. "어떡하지? 빨리해야겠다. 빨리빨리." 제 딸이 앉을 변기를 깨끗하게 닦기라도 하는 것일까. 요즘 엄마들 참 유난스러워. 속으로 구시렁구시렁 흉을 봤다.

    그러나 그녀는 '빨리빨리'를 주문처럼 욀 뿐 정작 밖으로 나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한시가 급한 여자애가 "엄마, 엄마" 하고 애달프게 부르는데도 그녀는 들은 체 만 체하며 하던 일에만 열중했다. 꽈배기처럼 엉켜버린 그 애의 다리를 지켜보고 있노라니 내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참다못한 내가 신경질적으로 똑똑 노크를 하며 "저기요, 얘 싸겠어요!" 하고 외치는 순간, 답답하게 닫혀 있던 문이 벌컥 열렸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그녀의 품에는 아기가 안겨 있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의 손길이 닿아야만 하는 작디작은 남자 아기였다. "죄송해요. 기저귀가, 빨리 나오려고 그랬는데 기저귀가…." 발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렸고 까만 뿔테 안경은 코끝까지 내려와 있었다.

    기저귀 교환대 없는 화장실, 아기 엄마의 '진땀'
    /이주윤
    그녀는 나를 기다리게 해서 미안했는지 나에게 순서를 양보했다. 됐다고, 무슨 소리 하시는 거냐고, 급한 건 내가 아니라 얘라고 손사래를 치자 그녀는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쉬가 아니고 응가라서 또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여자애는 커다란 비밀을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으앙 눈물을 터뜨렸고 누나의 울음소리에 동생도 따라 보채기 시작했다.

    "빨리요. 이러다 진짜 싸겠어요!"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딸아이의 손을 낚아채 칸막이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나는 화장실 벽에 기대서서 머릿속으로 가만히 셈을 해보았다. 하루에 화장실을 여섯 번만 간다고 쳐도 애가 둘이니까 합이 열두 번. 그럼 이 고생을 매일매일 열두 번씩 한단 말이야? 맙소사, 얼마나 힘이 들고 진이 빠질까.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핑 돌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일을 끝마친 세 사람이 문을 열고 나왔다. 아이들의 엄마는 잘못한 것 하나 없으면서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과의 인사를 하며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한참의 기다림 끝에 변기에 안착한 나는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기저귀 교환대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 그녀는 기저귀를 어떻게 갈았단 말이지? 그래, 그랬구나. 변기 뚜껑을 내리고 아기를 눕혔던 거야. 그래서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쩔쩔맬 수밖에 없었던 거지. 조카 없는 나로서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여태껏 다녔던 그 많은 화장실 중 기저귀 교환대가 있는 곳이 몇 군데나 되었더라. 세상에,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일까. 괜스레 내가 다 서러워 눈물이 핑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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