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빈자리를 채우는 물새처럼… 지금도 이 섬은 자란다

조선일보
  • 황두진 건축가
    입력 2018.06.08 03:00

    [황두진의한 컷 공간] 퇴적의 현장 '밤섬'

    작은 배를 타고 한강에서 바라본 밤섬과 여의도의 스카이라인.
    작은 배를 타고 한강에서 바라본 밤섬과 여의도의 스카이라인. / 황두진
    가끔 작은 배를 타고 한강에 나간다. 물은 아래로 흐르기 때문에 배를 타면 가장 낮은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볼 수 있다. 높은 산이나 건물에서 내려다보는 것과는 아주 다른 경험이다. 이 도시에 이런 경관이 있었나 싶은 경우도 많다. 한강의 수위가 변하면 평소에 물에 잠겨 있던 교각이나 제방의 아래쪽이 드러나기도 하고 경사가 완만한 곳에서는 평소와 전혀 다른 지형을 볼 수도 있다.

    비릿한 물 냄새를 맡으며 물과 땅이 만나는 경계를 살피거나 혹은 노에 감겨오는 수생식물, 이런저런 부유물들을 관찰하는 것도 이 경험의 일부다. 그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것은 밤섬 주변을 지날 때다. 밤섬은 자라고 있다. 그 퇴적의 현장을 보게 된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밤섬은 한때 사람이 살던 곳이었다. 배 만드는 것을 생업으로 삼던 이들이 살았다. 조선 시대에는 한성부 율도라는 이름이었고 해방 후에는 마포구 율도동이었다. 당시 사진을 보면 전체적으로 볼록한, 매우 아름다운 섬이었다. 그런데 1968년 여의도 제방 공사용 골재 채취와 홍수를 대비한 강폭 확보라는 이유로, 500명 남짓한 주민들을 이주시킨 후 섬을 납작하게 폭파하고 말았다. 현재 상류 쪽인 위 밤섬은 영등포구 여의도동, 하류 쪽인 아래 밤섬은 마포구 당인동이다. 물리적으로나 행정적으로 두 개의 섬이다.

    밤섬은 서서히 반격을 시작했다. 퇴적 작용으로 섬이 다시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폭파 당시보다 커졌다고 한다. 나무가 자라고 토사가 쌓이면서 섬의 높이도 조금씩 높아지는 추세다. 주민들이 떠난 그 자리에는 새들이 날아들었다. 100여 종의 식물과 50종 남짓한 조류가 서식한다. 이제 밤섬은 철새 도래지 및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도심 내 물새 보전지로 이름이 높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으니 도시 한복판에 있으나 원시의 땅이다. 2012년에는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기도 했다.

    당산철교와 여의도를 배경으로 한 악어섬.
    당산철교와 여의도를 배경으로 한 악어섬.
    밤섬 인근에는 또 다른 섬이 하나 있다. 원래 선유도의 일부였으나 역시 폭파 후 일부만 남은 악어섬이다. 선유도에서 100m 정도 떨어져 있다. 역시 새들이 많아 날아오는 곳으로 길이는 30m 정도에 불과하다. 밤섬과는 달리 나무 한 그루 없는 완전한 바위섬으로, 날카로운 표면에선 아직도 폭파 당시의 기운이 느껴지는 듯하다. 비록 인간의 개입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한강 한복판에 이렇게 야생의 섬들이 있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물론 이들 섬 주변에 접근할 때는 새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밤섬은 상륙해서는 안 되는 섬이기도 하지만 퇴적물로 인해 주변의 수심이 깊지 않아 가까이 접근하기도 어렵다. 한강 수계의 여러 댐이 방류해 한강 수위가 올라가면 두 개로 나뉜 섬의 모습이 더욱 뚜렷해진다. 항공사진을 보면 좀 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두 섬 사이의 길쭉한 호수는 북쪽의 얕은 여울을 통해 한강과 맞닿아 있다.

    아마도 물은 안팎으로 들락거리고 있을 것인데 섬 내부의 풍광은 어떨지 자못 호기심을 자극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위 밤섬에는 폭파의 흔적으로 보이는 또 다른 둥근 호수가 있었다. 최근 항공사진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제 섬 내부에도 퇴적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연의 회복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도시를 배경으로 한 밤섬의 모습은 잘 알려지지 않은 서울의 비경이다. 밤섬의 나무가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그 풍경은 변한다. 한여름 울창한 수풀 위로 여의도의 스카이라인이 걸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밤섬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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