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화장품 팔아 지구 살리겠다는 사나이

입력 2018.06.08 03:00

[클라란스 회장]

크리스티앙 쿠르탱 클라란스
재활용품으로 회사 꾸며… 잘하자, 더 잘하자, 즐기자

클라란스 회장
크리스티앙 쿠르탱 클라란스 회장은 딸바보 아빠다. 세 딸을 키우면서 그는 “여성만의 언어와 감성을 이해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임을 알게 됐다”고 했다. 클라란스 본사엔 1만1000여 명의 직원이 있는데 이 중 85%가 여성이다. 임원직 여성 비율은 이보다 더 높다. “여성 리더십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요즘은 도태되거든요. 생존 전략을 잘 짜려면 여성과 손을 잡아야 하는 거죠(웃음).” / 클라란스
"올랄라, 당신이 오니 복도에 불이 켜지네요." 지난달 말 프랑스 화장품 회사 '클라란스(Clarins)'의 파리 본사 건물에 도착하자 홍보 담당자 안드레아가 농담처럼 건넨 말이다. 정말이었다. 머리 위로 깜박 전구가 켜지고 있었다. 월요일 오후 3시였다. 이 회사는 불도 안 켜고 일하나? "오늘 비 오고 흐리니 불이 켜진 거예요(웃음). 이 건물은 채광이 충분한 한낮엔 불이 자동으로 꺼지게 돼 있거든요. 저절로 에너지 절약이 되도록 건물 전체가 설계된 거죠."

클라란스 본사는 건물 전체를 엄격하게 친환경 규범을 지켜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건물을 처음부터 계획하고 짓도록 한 이는 크리스티앙 쿠르탱 클라란스(63) 회장이다. 파리 본사 건물에서 만난 그는 키가 1m90㎝로 훤칠했다. 그가 환하고 가지런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인사를 건넸다. "봉주르. 친환경 클라란스 세상에 온 걸 환영해요." 등 뒤로는 빈 병들이 보였다. 다 쓴 화장품 용기를 채색하고 장식해서 조각품처럼 진열해놓은 것이었다. 크리스티앙 회장은 "이 회사 건물에 있는 모든 예술 장식이나 미술품이 알고 보면 이렇게 재활용품으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친환경이 밥 먹여준다"는 회사

―보통은 값비싼 예술품으로 장식을 하는데요.

"많이들 그렇게 하죠. 그걸 나쁘게 보진 않아요. 저와 제 동생 올리비에는 다만 좀 다른 방식으로 건물을 꾸미고 싶었어요. 재활용품으로 장식했다고 하면 흔히들 '그게 괜찮겠어?'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요. 얼마든지 멋질 수 있죠."

―3년 전에 이 건물을 지으셨죠.

"카펫, 의자 하나까지 고민했어요. 모든 물건을 재활용되는 것으로 골랐죠. 가령 저기 놓인 저 의자는 쇠와 가죽, 나무가 모두 분리되고 재활용도 되죠. 에너지 절약에 특히 신경 썼어요. 건물 옥상 정원에선 양봉을 하고 꿀을 채집해요."

―멋지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클라란스가 NGO는 아니지 않습니까.

"할 필요가 있죠. 왜 없다고 생각하세요? 서울에선 요즘 미세 먼지로 고생이라고 들었어요. 우리는 이제 시간 남고 돈 남아 환경을 돌보는 게 아니에요. 앞으로 미래와 환경에 대한 비전이 없는 회사는 외면받고 도태될 겁니다. 이젠 기업이 돈을 벌고 싶다면, 이웃과 지구부터 돌봐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 거죠."

―착한 기업이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라는 건가요.

클라란스
창립자 자크 쿠르탱 클라란스(가운데)와 두 아들. 왼쪽이 크리스티앙 회장이고 오른쪽이 동생 올리비에 부회장이다. / 클라란스
"그럼요. 숨 쉴 공기가 깨끗하지 못하고 마실 물이 안전하지 않다면 당장 살아남기 어렵지 않겠어요.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면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크리스티앙의 아버지 자크 쿠르탱 클라란스는 본래 의학도였다. 세계2차대전이 끝나고 1950년대 초까지 병원을 돌며 회진을 따라다녔다. 한 여자 환자의 울음이 그를 바꿔놓았다. 배에 남은 심한 수술 자국을 보면서 "더는 수영복을 못 입게 됐다"고 우는 환자였다. 수술하면 몸에 흉터나 상처가 남는 건 당연하다고 여길 때였다. '수술만큼이나 흉터나 화상 치료도 중요하구나.' 자크는 그 길로 병원을 나와 화상과 흉터, 염증 치료법에 골몰했고, 1954년 파리에 식물성 오일로 몸 상처를 낫게 하는 작은 인스티튜트(연구소)를 차렸다. 클라란스의 시작이다. 자크 쿠르탱 클라란스가 2007년 세상을 떠나고, 큰아들 크리스티앙이 회사 경영을 맡았다. 동생 올리비에는 이 회사 제품 연구를 지휘한다. 크리스티앙 회장은 클라란스를 전 세계 150여 국 1만3000여 개 매장에 진출한 글로벌 회사로 키워냈다. 1984년엔 프랑스 증시에 상장했으나 2008년 36억달러(약 3조8550억원) 규모의 주식을 사들여 증시에서 철수했다. 크리스티앙 회장은 "덕분에 매년 수익의 5%를 제품 연구 개발에 맘껏 재투자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매년 알프스 지대의 땅을 사고 계시단 얘기도 들었습니다.

"'알프 액션' 프로젝트죠. 1992년부터 시작했어요. 알프스는 유럽 생태계 자원의 상징 같은 곳인데, 그곳조차 개발 위협에 시달리죠. 그래서 땅을 사들이기 시작했죠. 요즘 이곳에 에델바이스도 심고 약초도 키워요."

딸아이를 얻고 눈뜬 것들

클라란스
클라란스의 베스트셀러인 페이스 오일. 100% 식물 추출 원료로 만들어진다. / 클라란스
크리스티앙 회장은 1985년 첫딸 비르지니를 얻었다. "이때 삶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했다. "미래와 환경을 위한 노력을 지금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태양열 비행기를 타고 다닌다고 들었는데요.

"맞아요(웃음). 1년에 절반가량을 해외 출장을 다니게 돼요. 그때마다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타지만, 아시다시피 비행기가 환경에는 좋지 않죠. 이 무렵 '솔라 임펄스' 프로젝트에 대해 들었어요. 베르트랑 피카르라는 사람이 친환경 비행기를 개발해서 100% 태양열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세계여행에 도전한다는 겁니다. 이젠 저도 가까운 나라 갈 때 이 친환경 비행기를 타고 다니죠. 2025년까지 장거리도 거뜬히 다닐 수 있는 태양열 비행기를 개발하려고 하고요."

크리스티앙 회장에겐 세 딸과 두 아들이 있다. 막내와 넷째 아이는 늦둥이로 각각 7세, 11세이다. 요즘도 외국 출장 갈 때 어린 두 아이는 물론이고 큰 자녀들도 불러 가급적 함께 다닌다.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나 마다가스카르의 마을부터 아시아 초원지대나 숲도 함께 다니죠. 같이 나무 심고 약초 캐고요.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훈련이고 배움이죠."

잘하자, 더 잘하자, 즐기자

크리스티앙 회장은 2011년부터 사회적 기업 '피드(Feed)'의 캠페인에도 동참하고 있다. 빈곤한 아프리카 국가에 학교 급식 비용을 후원한다. 지금까지 2000만명분의 급식 비용을 지원했다.

―그래도 기업인데요. 돈은 언제 버나요.

"열심히 벌죠(웃음). 보통 사업과 이런 봉사나 후원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나눈 만큼 돌아와요. 이들이 결국 우리 직원이 되고, 우리에게 최고의 원료를 대주는 동업자가 되고, 우리 고객이 됩니다. 살아생전 아버지께선 제게 '잘하자, 더 잘하자, 그리고 즐기자'라고 하셨어요. 저도 그 말을 하고 싶습니다. 자연과 이웃에게 잘하고, 더 잘하고, 함께 즐겼으면 해요. 그게 오래가는 길이니까요."

―원하는 삶을 그럼 충분히 사셨을까요.

크리스티앙 회장은 빙그레 웃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가 하나도 없을 때까지 도우려면 아직 멀었죠. 그때까진 나무처럼 꼿꼿하게 일하고 또 사랑하면서 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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