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 처음 본 야구선수들… "한국 살래요"

입력 2018.06.07 03:01

라오스 대표팀 한국서 3주 캠프
이만수 前SK감독이 2014년 불모지에 야구 씨앗 뿌려 3년 만에 '라오스 야구협회' 창립

수은주가 섭씨 30도까지 치솟은 지난 5일 화성 드림파크야구장. 불볕더위 속 곳곳에서 '땅짜이(집중하자)' '만짜이!(자신감 갖자)' 같은 낯선 언어가 들렸다. 동남아시아 라오스 야구단 36명(남 24, 여 12)이 쉴 새 없이 펑고(수비 연습을 하도록 배트로 공을 쳐주는 것)를 받고 공을 던지고 있었다. 온몸이 땀범벅 될 정도로 지쳤지만, 몇몇은 훈련을 마치고도 운동장을 떠나지 못했다. 한 선수가 말했다. "감독님, 저희 여기서 살면 안 되나요?(웃음)"

화성시와 헐크 파운데이션재단(이사장 이만수) 등의 도움을 받은 라오스 야구 대표팀은 지난 4일부터 3주 동안 한국에 머물며 '미니 캠프'를 소화하고 있다. 6일엔 덕수고 야구부와 합동 연습을 했다. 야구장이 없어 축구장, 잔디밭에서 배트를 휘두르던 이들에게 한국은 상상 속에서나 꿈꾸던 '야구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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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환한 얼굴이 라오스 야구의 현재이자 미래다. 라오스엔 야구장 하나 없지만 오직 야구에 대한 열정으로 선수들이 꿈을 키워가고 있다. 최근 한국을 찾은 라오스 야구 대표팀이 6일 서울 덕수고와 합동 훈련하기에 앞서 밝은 표정으로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 /장련성 객원기자

라오스는 '야구 불모지'였다.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 아시아 최빈국 중 하나인 라오스엔 야구가 들어찰 공간이 없었다. 이만수(60) 전 SK 감독이 2014시즌 후 프로 사령탑에서 물러난 뒤 라오스로 건너가 그 땅에 야구 씨앗을 뿌렸다. 이 전 감독은 "처음 야구를 하겠다는 사람 중엔 맨발로 온 이들도 있었다. 야구라는 스포츠를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눈앞이 막막했다"고 말했다.

'맨땅에 헤딩' 방식의 훈련엔 우여곡절이 많았다. 야구장이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잡한 야구 규칙을 설명하기란 고역 그 자체였다. 가장 애를 먹었던 단어가 '희생'이었다. 이 전 감독은 "희생 번트·플라이를 가르치는데 '내가 왜 죽어서 다른 사람을 살려야 하느냐'고 묻더라"며 "야구가 팀 스포츠라는 점을 받아들이게 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이만수(오른쪽) 전 SK 감독이 라오스 포수를 지도하는 모습.
이만수(오른쪽) 전 SK 감독이 라오스 포수를 지도하는 모습. /이순흥 기자

3년 전 권영진(전 대구고 감독), 박종철 감독 등이 현지에 합류하며 라오스 야구단에도 나름 체계적 훈련이 시작됐다. 이 전 감독은 선수 지도에서 한발 물러나 야구단 살림을 맡는 '단장' 역할을 한다.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었던 초창기와 달리 현재 라오스 야구 인구는 150명을 넘어섰다. 14세 중학생부터 27세 직장인까지 구성도 다양하다. 수준을 논하기 민망했던 야구 실력은 이제 한국 중3 엘리트 선수 정도로 성장했다고 한다. 라오스 대표팀의 투수 겸 3루수인 콜라 포앙께오(18)는 "처음엔 규칙이 어려워 야구가 재미없었지만, 이젠 야구가 내 삶의 일부가 됐다"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뿌리내린 지 4년. 라오스 야구는 더 큰 기적을 꿈꾼다. 지난해 7월 '라오스야구협회'가 창립했고, 지난달엔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로부터 정식 가입국 승인도 받았다. '최대한 여러 국가의 출전을 허용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오는 8월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출전 가능성도 매우 커졌다.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는 이들도 생겼다. 야구 경력 3년인 피딱 헙컵(18)은 "SK 김광현 선수를 가장 좋아한다. 나도 언젠가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며 함께 경기하고 싶다"고 했다. 이 전 감독은 "100년 전 한국에서 야구의 싹이 피어났듯 라오스 야구도 더 단단히 성장해 나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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