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싱글맘 '장미'는 삶의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조선일보
  • 김경은 기자
    입력 2018.06.07 03:01

    장편소설 '엑시트' 펴낸 황선미, 미혼모·해외 입양 문제 다뤄

    황선미 작가

    열일곱 살 '노장미'는 착하고 기특한 여자애였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려져 할머니 손에 컸지만 장미는 꽃 중의 꽃, 로즈(rose). 태생적 구멍을 감추기 위해 애써 웃었고, 알아서 집안일을 거들었고, 배달 아르바이트를 해 용돈을 벌었다.

    하지만 장미에게 세상은 가혹했다. 짝사랑했던 남자에게 딱 한 번 솔직했던 그날, 장미의 삶은 뒤엉켰다. 폐가로 끌려가 몸을 빼앗긴 뒤 난생처음 "사랑해"란 말을 들었지만 아프고 굴욕적이고 수치스러울 뿐이었다. 그리고 장미는 아이를 가졌다. 교복을 벗고 학교를 나왔다.

    국내 어린이 책 분야에서 처음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블록버스터급 작가 반열에 오른 황선미(55·작은 사진)가 '엑시트(EXIT)'(비룡소)를 펴냈다. 장편소설이란 타이틀로 나온 첫 책이다. 해외로 입양 가는 아기 사진을 무료로 찍어 주는 사진관에서 보조로 일하는 10대 미혼모가 주변의 조롱과 냉대를 받으면서도 가슴 한쪽으로는 누군가의 따뜻한 포옹과 도움을 갈망하며 '출구(exit)'를 찾아나가는 이야기다.

    황미옥이 그린 ‘엑시트’ 속 삽화. 소설 속 주인공 장미는 사진관 보조로 일한다.
    황미옥이 그린 ‘엑시트’ 속 삽화. 소설 속 주인공 장미는 사진관 보조로 일한다. /비룡소

    작가는 10년 전 우연히 들려온 시청 직원의 말에서 가슴에 얹힌 단어가 '입양'이었다고 했다. "입양인을 자신과 엄연히 구분 짓는 듯한 뉘앙스의 '우리'와 미간에 주름을 만들던 그녀의 표정. 자꾸만 고개가 수그러들던 나 자신." 그 후 집요한 취재를 통해 미혼모인 주인공 '노장미'와 그녀를 통해 이어진 버림받은 자들의 신산한 삶을 치밀한 묘사로 담아냈다. 단출하지만 아픔이 배어든 단어와 문장들이 읽는 이의 살갗을 저민다.

    소설은 중반부로 넘어가면서부터 자신의 뿌리를 찾아 모국을 찾아온 해외 입양인들의 이물감과 트라우마로 확장된다. 황선미는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 상흔을 인간이 인간에게 가한 원초적인 폭력으로 받아들인다.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르고 왜 그렇게 멀고 낯선 곳까지 가야 했는지 의문이었던 입양인 화가의 작품 속 여성 얼굴은 하나같이 비어 있었다. 이목구비가 없었다"고 했다.

    어쩌면 '출구'란 긴급한 상황에 놓인 이들을 탈출할 수 있게 도와줘서 좋을 뿐 아니라, 출구가 어디에 있는지 슬쩍 봐두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니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닐까. 저기 먼 출구의 빛을 마주하는 이야기. 소설 속 '엑시트'는 자살을 도와주는 단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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