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둘에 아들 얻은 격정의 화가… "나는 미래를 그린다"

조선일보
  • 변희원 기자
    입력 2018.06.06 03:01

    중국 현대미술 거장 한메이린, '격정, 융화, 올림픽' 세계순회展

    "저, 한메이린은 82세입니다. 올해 아들을 얻었습니다. 머리카락이 빠지지도 않았고 하얘지지도 않았습니다. 두 눈의 시력은 각각 1.5, 1.2이고 혈압은 110에 70입니다. 이가 두 개 빠졌고, 귀 한쪽이 잘 안 들리는 게 조금 아쉬울 뿐입니다."

    첫 마디를 이렇게 시작한 한메이린(韓美林·82)은 두 시간 가까이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전시장 구석구석을 돌며 작품 얘기뿐 아니라 농담도 던졌다. 지칠 줄 모르는, '격정'의 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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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메이린이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 걸린 대작‘말(馬)’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그가 즐겨 그리는 판다뿐만 아니라 호랑이, 물고기, 소, 쥐 등 온갖 동물 그림을 볼 수 있다. 그는“예술가라면 인류와 자연의 생존에 대해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한메이린 세계순회전이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다. '격정, 융화, 올림픽'이 전시 문패다. 회화, 서예, 조각뿐 아니라 주전자, 그릇, 의자까지 300여 점을 선보인다. 주전자랑 의자까지 만드는 이유를 묻자 그는 종이에 연꽃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만 그릴 수 있으면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연꽃을 이렇게 그릴 수만 있다면 그게 주전자든 화선지든 뭔 상관인가요."

    한메이린은 중국을 대표하는 생존 화가 중 드물게 '대가'(大師)로 불린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마스코트인 푸와(福娃), 중국국제항공의 불타는 봉황 로고를 만들었다. 올 초 아들이 태어났을 때 중국 언론에선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김정숙 여사가 한메이린을 만났다. 이번 전시 개막식에도 온 김 여사는 "한메이린의 예술에는 경계가 없다. 조각, 회화, 서예, 공예, 디자인 모든 영역이 하나로 통한다"고 말했다.

    5일 개막식에 온 김정숙 여사가 한메이린의 청동조각상‘엄마와 아들’을 관람하고 있다.
    5일 개막식에 온 김정숙 여사가 한메이린의 청동조각상‘엄마와 아들’을 관람하고 있다. /뉴시스
    산둥(山東) 지난(濟南)에서 태어난 한메이린은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빈민 초등학교'를 다닐 정도로 가난했다. 중앙공예미술학원에 입학했고 문화대혁명 때 감옥에 갔다. 출소한 뒤 동물을 그리기 시작했고, 고문자인 '천서(天書)'와 암벽화를 수집해 이를 작품에 응용했다. 이번 전시에도 문자를 이미지화한 대표작과 동물 그림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동물과 문자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사람 얼굴을 그렸다가 감옥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 '한메이린 예술관' 입구에 걸린 액자엔 '너는 수레를 끄는 소다, 한평생 열심히 일하자!'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고 한다. 그는 새벽 2시에 자서 아침 6시 반에 일어난다. 스스로 '게으름뱅이의 건강법'이라고 이름 붙인 간단한 체조를 하고 작업을 시작한다. 하루 18시간 동안 작업하고, 그 중 4시간은 책을 읽는다. 그는 "독서는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해 알고 싶어서 한다. 젊은이들을 알고 싶어 좋아하지도 않는 TV 드라마도 가끔 본다"고 했다.

    한메이린은 "영감(靈感)은 책이 아니라 차(車)에서 얻는다"고 했다. 그는 승합차를 개조한 '예술 카라반'이란 것을 타고 지난 41년간 중국 각지와 세계를 돌아다녔다. 전시장 한가운데 있는 코끼리 조형물은 올해 네팔에 다녀와서 만든 것이다. "예술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동시대인에게 아름다움을 일깨워줘야 합니다. 과학자가 시대에서 가장 앞선 것을 만들지만 그들이 잊어버린 것을 예술가가 만들어야 합니다."

    한메이린은 생후 4개월 된 아들을 왼팔에 품고 오른손으로 붓글씨 쓰는 사진을 보여줬다. 28세 연하인 네 번째 아내와 낳은 아들이다. 그는 "아들이 오랫동안 안겨 있으면서도 칭얼대지 않는다. 내가 글씨 쓰는 모습을 즐겨 본다"며 자랑했다. "예술가는 낙관적이어야 합니다. 미래를 그리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요. 저는 아름다움을 알고, 사랑을 알고, 즐거움을 압니다. 제가 아는 것을 세상에도 알리고 싶어요." 7월 8일까지, (02)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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