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부장판사들이 5일 이른바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수사를 맡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고법부장들은 "고발, 수사 의뢰·촉구 등이 이뤄질 경우 법관과 재판 독립이 침해될 수 있음을 깊이 우려한다"고 했다. 재판 경력 25년 안팎의 고위직 법관들이 집단 목소리를 낸 건 처음이다. 그만큼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들 회의는 의사정족수 미달로 이틀 연속 무산됐다. 검찰 고발 반대 판사들이 회의에 불참한 결과다. 이들과 비슷한 경력의 서울고법 판사 회의에선 '검찰 고발'과 '법원 자체적인 추가 조사' 모두 부결됐다. 지난 1일부터 각급 법원 단독·배석판사들이 잇달아 검찰 수사를 촉구한 것과 상반된 결과다. 법원 판사들이 이념 성향은 물론 세대와 직급별로도 완전히 두 쪽으로 갈라져 내분(內紛)을 빚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대법원은 '양승태 행정처'가 작성한 문건 90여 건을 추가로 공개했다. 기존에 공개된 조사단 보고서 등과 별 차이가 없는 내용이다. 판사 인사나 관할 법원 지정 등 일상적 행정 업무와 관련된 것도 있다. 문건 추가 공개는 당초 조사단이 정보공개법에 위반될 수 있다고 본 사안이다. 그런데 대법원장과 그 지지 세력 판사들이 '공개'를 압박하자 결국 공개했다. 법원 외부의 힘을 빌려 반대쪽 판사들을 압박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밖에 없다. 법을 다룬다는 판사들의 행태가 이렇다.
요즘 재판받는 당사자들이 맨 처음 하는 일은 담당 판사가 어떤 연구회 소속인지 파악하는 것이라고 한다. 대법원장과 가까운 법원 서클 소속 판사들이 요직을 싹쓸이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판사들이 법이 아니라 특정 이념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재판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법원이 자초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