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칭찬받을 가망 없이 비판에 노출되는 불행한 필멸자, 그 이름은 사전 편찬자

  • 디지털편집국 문화부
    입력 2018.06.13 06:00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코리 스탬퍼 지음, 박다솜 옮김|윌북|284쪽|1만4500원

    “클릭 경제에서 좋은 정의를 쓰는 기술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인터넷 검색 결과 최상단에 올라가는 데 필요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민첩성이다. 바닥에 웅크리고 있길 좋아하는 고리타분한 사전 편찬자들에게 이건 무척 급격한 변화다.”

    주차장에선 이따금 마약 거래가 이루어지고, 건물 뒤편 유리에 총알 자국이 남아 있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한 동네. 벽돌 건물의 2층으로 올라가면, 사람은 있지만 소리가 없는 기묘한 사무실이 나온다. 그곳엔 하루 8시간 이상 칸막이 책상에 앉아 커피를 들이부으며 오직 단어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전의 작가이자 편집자인 그들은 침묵 속에서 세상의 모든 언어를 신중히 채집해 체에 거르고, 분류하며, 정의 내린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 출판사 메리엄 웹스터에서 20년째 사전을 써온 코리 스탬퍼도 그중 한 명이다. ‘읽기’가 생활이고 ‘쓰기’가 직업인 그의 삶은 가장 느릴 듯 보이지만, 장대하고 역동적이다. 인간들이 사용하는 제멋대로인 언어를 한 권의 책으로 가지런히 정리하는 일은, 사전에 오른 단어 수만큼이나 사연도 많고 곡절도 많다.

    사전은 사람이 만든다. 어떤 단어를 넣을지부터 단어의 품사를 결정하고, 인용문을 찾고, 정의 내리고, 배열하는 일까지 모두 사람의 손을 거친다. 사전 편찬 일은 ‘고체’로 분류될 만큼 느리게 움직이지만,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사전은 완성된 순간 낡기 시작하기 때문에 사전이 출시되는 즉시 다음 개정판을 준비해야 한다. 메리엄 웹스터 대학 사전의 경우 신판 수정에 2~3년이 걸린다. 새 단어 몇 개를 추가하는 것으로 신판 작업이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단어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1950년에 한 단어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사용되는 데 20년쯤 걸렸다면, 지금은 1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만큼 사전에 단어를 담아내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take'처럼 아무도 찾아보지 않을 것 같은 작은 단어도 정의와 인용문을 손보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린다. 그런가 하면, 단어의 정의 하나가 세상에 큰 영향력을 미치기도 한다. ‘marriage'라는 단어에 ‘동성인 사람과 맺어진 상태’라는 하위 의미를 추가한 것만으로도, 재판에 인용돼 동성 결혼의 합법성에 영향을 미치는 판결을 끌어낸 것이 그 예.

    1955년 영어 사전을 혼자 힘으로 8년 만에 완성하며 사전의 체계를 정립한 영국 시인 새뮤얼 존슨은 사전 편찬자를 “세상의 낮은 업에 노역하며, 칭찬받을 가망 없이 비판에 노출되고, 성실함에 보답받지 못하는 무해한 노역자이자, 불행한 필멸자”라고 했다. 저자 역시 한 단어의 의미를 확장하는 바람에 독자들로부터 수천 통의 항의 메일을 받고, 인터넷 사전의 성장으로 정리 해고를 걱정한다. 그런데도 사전에 올바르게 기술할 적확한 단어를 찾느라 매일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며, 흠뻑 젖은 뇌를 쥐어짜고 숙명적으로 천천히 눈이 멀어져 간다.

    누군가의 입에서 태어나 사전에 등재되고, 세상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단어의 모든 생애를 그려낸 것이 흥미롭다. 특히 매일 좋은 단어를 찾아 헤매본 적이 있다면, 그 단어를 만드는 언어 노동자의 분투기에서 공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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