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우린 휴혼 중입니다” 헤어지지 않기 위해 따로 사는 이 부부

  • 디지털편집국 문화부
    입력 2018.06.12 06:00

    나는 지금 휴혼 중입니다
    박시현 지음|은행나무|284쪽|1만4500원

    “거의 3주에 걸친 공방 끝에 내가 집에서 나가고, 시부모님이 남편과 합가하여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결정 났다. (...) 아이는 언제든 만나거나 데리고 있을 수 있으며, 이혼은 생각하지 말고 따로 살아볼 것.”

    프리랜서로 일하며 네 살배기 아들의 양육을 전담하던 박시현은 육아와 살림에 관한 기대치가 높은 남편과 갈등 끝에 결혼 5년 차인 2017년 가을, 따로 살기로 했다. 저자가 월세방을 얻어 나가 생활비를 직접 벌어 살고, 아이는 수요일 밤과 주말에 데려와 함께 보내는 식이다. 별거와 다른 점은 “이성 문제는 만들지 말”고 “기능적, 정서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데 있다. 즉 부부간의 애정과 부모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은 채 단순히 삶의 공간만 분리하는 것이다.

    서구에서 LAT(Living Apart Together)라 불리는 생활양식을 도입했다고 볼 수 있다. 우디 앨런과 미아 패로, 팀 버튼과 헬레나 보넘 카터 등 서구 커플들이 단단한 경제적인 토대 아래 서로의 생활을 존중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라면, 이 부부의 결정은 가부장제 아래 양육을 전담하며 자연스레 경력 단절 여성이 돼야 했던 저자의 독립이 우선적으로 필요했다는 점에서 대담한 도전이 됐다.

    불같은 연애 끝에 결혼했음에도, 가부장제는 그 사랑을 건사하지 못했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정해진 임무를 수행하는 가정에서 자란 남편과 청소년기부터 정서적으로 독립해 살아온 저자의 가족관이 충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되자, 미래와 꿈을 여전히 말하는 것은 가족보다 개인을 우선시하는 반역이 됐다. 하지만 꿈을 열망하는 ‘나’를 잃을 수 없었고, 결국 경찰까지 출동하는 부부 싸움으로 치달았다. 부부 싸움을 울며 말리던 아이가 어느새 엄마와 아빠가 싸우건 말건 잠들 정도로 무뎌지고 모습을 보고 충격받은 부부는 서로를 잃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 생활을 분리하는 ‘휴혼’을 결심했다.

    아등바등 시작한 휴혼의 필수 조건은 ‘자립’이었다. 결혼 전 커리어가 있었음에도 저자는 ‘연탄 자살’을 검색할 정도로 막막함을 느꼈다. 하지만 막상 사회로 발걸음을 내딛자 프리랜서로 일하던 강사 일을 더욱 본격적으로 할 수 있게 됐고, 친구들과 시작한 스타트업에서 결혼 이전의 사회적인 이름을 돌려받은 듯한 희열을 느끼게 된다.

    동시에 남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시간이 됐고, 떨어져 지내는 아이에 대한 애틋함도 배가되었다. 휴혼이라는 공백은 저자에게도 남편에게도, 또 아들에게도 서로가 정말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임을 깨닫고 서로의 관계와 입장, 가정에서의 내 자리를 곱씹어볼 수 있게 했다.

    저자 부부의 휴혼은 전통적인 ‘아빠-엄마-자식’으로 이루어진 가족상을 강요하는 사회적 통념을 뒤집어보는 실험이기도 하다. 다른 가족상을 고민해보는 것은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생겨나는 요즘, 우리 사회와 이웃을 더욱 풍요롭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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