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부자에게 세금을 물리고 싶은가? 슈퍼 리치의 ‘돈맥’을 감추는 사람들

  • 디지털편집국 문화부
    입력 2018.06.05 06:00

    국경 없는 자본
    브룩 해링턴 지음, 김영선 옮김|동녘|380쪽|1만8000원

    “자산관리사가 하는 대부분의 일상 업무는 ‘윤리적으로 애매한 영역’, 즉 공식적으로는 합법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위법한 일의 영역에서 일어난다.”

    역외 탈세, 세금 회피, 상속세 포탈… 이젠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뉴스거리다. 2017년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파라다이스 페이퍼스에 232명의 한국인이 연루됐으며, 현대상사, 효성, 한국가스공사 등 대기업과 공기업들이 언급된 것으로 드러났다. 연일 화제가 되는 갑질 대한항공 역시 역외 탈세, 조양호 회장의 상속세 포탈 의혹으로 번지고 있다.

    전 세계 부자들의 조세 회피 행태는 의외로 쉽게 이뤄진다. 이들을 돕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부자 뒤에서 자본의 국제적 이동을 돕고 관리하는 사람, 이름하여 자산관리사다. 이들의 목표는 자신들의 존재뿐 아니라 고객(부자)과 고객의 자산을 대중의 시야에서 지우는 것. 덕분에 ‘부자 3대 못 간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은 옛말이 됐다.

    코펜하겐경영대학원 경제사회학과 교수 브룩 해링턴은 8년에 걸쳐 18개국의 자산관리사들을 인터뷰하며 자산관리사를 연구했다. 연구에 몰입하기 위해 자신도 2년간 자산관리 과정을 밟아 자산관리사가 됐다. 저자는 자산관리사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친다. 그리고 부자들이 정당한 몫의 세금을 내고 법규에 따르도록 하고 싶다면 부유한 개인이 아닌, 그들에게 봉사하는 대리인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년 말 발표된 ‘세계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이제는 상위 1%가 아닌, 상위 0.1%의 슈퍼 리치가 하위 50%와 맞먹는 부를 가진다고 한다. 그런데 이 연구 결과에서 말하는 부는 국가가 벌어들인 ‘소득’을 뜻한다.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이뤄진 연구의 흐름은 거의 소득 분석에 집중됐다. 하지만 소득은 단기적인 자산의 흐름일 뿐, 부를 좌우하는 것은 자산의 축적분인 재산이다. 저자는 소득 불평등보다 재산 불평등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득을 저축해 재산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재산의 출처는 보통 세습, 즉 부모에게서 그대로 물려받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산관리사의 개입이 들어간다. 자산관리사는 적절한 세금 우대 조치를 찾아 역외로 자본을 빼돌리거나 신탁을 만들어 상속세를 피하도록 해 고객의 재산을 그대로 자손에게 이전시킨다. 세습은 자본의 흐름을 고정시킬 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 정치적 권력마저 고정시킨다.

    자산관리사가 얼마나 불평등 문제에 기여하고 있는지 정량화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국가의 세수를 줄이고 부의 재분배를 막음으로써 재산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음은 명백하다. 자산관리사가 부자들의 재산 규모와 소유권을 불투명하게 만들면서 이러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기여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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