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서 노동자 된 고려인, 시를 쓰다

입력 2018.06.04 16:35

고려인마을 제공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조국에 정착한 김블라지미르씨(오른쪽)가 두번째 시집 출간을 앞두고 있다.
김블라지미르씨, 두번째 시집 앞둬
고려인들의 애환과 속내 읊어
이천영 목사 “출간비 돕고 싶다”
광주광역시=권경안 기자

김블라지미르씨는 고려인이다. 고려인들이 모여사는 고려인마을(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에서 살고 있다. 지난 2012년 조국(祖國)의 품에 안겼다. 광주에는 이듬해 왔다. 지난 1956년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에서 태어난 그는 타쉬켄트 문학대학과 의학대학에서 러시아문학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일용직 노동자로 생활하고 있다. 그런 그가 시를 쓰고 있다.

‘사람들은 말하지, 내가 아버지를 꼭 닮았다고/…/당신이 노래를 부르면 모두들 숨을 죽였지/멀리 어딘가에 있는 고향에 대한 노랠 부를 때면/…/눈이 붓도록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나는 보았지/…/아버지의 나라에 살고 있어 나는 행복하다네/그 때 울던 분들의 눈물을 이해한다네/그분들께 한반도는 바로 기억이자 사랑이었음을’(‘사람들은 말하지’)

러시아 연해주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당한 고려인의 2세. 그의 가슴속에는 아버지, 어머니의 한(恨)이 깊게 새겨져 있다. 그 한은 전체 고려인의 것이기도 하다. 이산인(離散人,디아스포라)의 아픔이 시작품 전편에 흐른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나는 창밖을 보네/숲속의 풀, 자작나무, 포플러…/나는 알고 있네, 부모님이 꾸셨던 꿈을/그것은 단 한 번만이라도 조국 땅을 밟는 것’(‘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경로를 따라서’)

아버지를 닮았다는 그가 아버지 대신 조국 땅을 밟았다. 그리고 강제이주 80년을 맏은 지난해엔 아버지, 어머니가 이주당했던 그 길을 따라가 보았다.

그는 조국의 산하를 노래한다. 그가 맞이한 ‘한국의 봄’은 ‘새들이 푸른 하늘을 나는 걸 보네/흔들리는 녹음은 내 머리에서 맴돌아/나의 감사는 너에게만 향할 뿐/나의 봄아 나는 이렇게 살고 있구나’이다. 그는 이 시에서 ‘우리들 심장은 네게만 복종하느니’라고 썼다.

조국에 복종하고 싶은 그지만, 마음속은 복잡하다. 그가 태어나고 평생 살아온 중앙아시아도 가슴 깊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소련학교를 다녔다’ ‘러시아어로 책을 읽었다’. 그러다 ‘한 순간에 나라가 무너졌다’(소련연방의 해체를 말한다). 그리고 고려인들은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다. ‘누구는 자기의 역사적 조국으로, 누군 미국으로, 누군 유럽으로, 우린 한국으로’. ‘허나 난 타쉬켄트를 옛날처럼 여전히 사랑한다’. 그러나 ‘어디를 더 사랑하느냐고 내게 물어보면/둘 중 하나에게는 안녕을 고해야되는데/나의 두뇌는 한국에서 살라고 하는데/심장은 타쉬켄트를 버리지 말라!고 한다’.(‘나는 열강에서 태어났다’ ‘우리는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그러면서도 조국에 안착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그는 ‘우리는 우정의 손을 내밀 준비가 되어있다’고 그는 시로 말한다. ‘친구들이여, 우리는 외국인이 아니다/우리는 핏줄로도, 마음으로도 가족이다’고 말한다(‘우리 사무실’)

조국의 삶은 가족과 함께 하고 있지만, 생활은 고되다. 그는 배 과수원에서 일해왔다.‘우리는 꿀벌처럼 모든 꽃을 수분시킨다네/얼마나 수확하느냐는 우리의 노동에 달렸어라!’(‘배 과수원에서’)

그의 두번째 시집이 세상에 나오려 한다.

김병학 시인이 번역을 마쳤다. 김 시인은 1992년 카자흐스탄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한글학교장, 현지 신문기자 등으로 활동한 바 있다. 그는 고려인들의 역사와 애환을 기록해오고 있다. 그는 “때로는 세련되고 때로는 소박한 김블리지미르 시인의 눈과 마음의 창을 통해 한국에 사는 고려인들이 느끼는 복잡한 속내와 애환, 조상들에 대한 자부심, 중앙아시아에 대한 생래적 애착 등 여러 속살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고려인마을 공동대표인 이천영(광주새날학교장) 목사는 “김블라지미르씨가 첫 시집 이후에도 꾸준하게 시작품을 써왔다”며 “그의 소중한 작품이 세상속에 다시 나올 수 있기 위해서는 시집출간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해야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블라지미르씨는 지난해 2월 정막례 계명대교수의 번역으로 ‘광주에 내린 첫눈’이란 제목으로 첫 시집을 출간하였다. 고려인 마을 전화 062-961-1925.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