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국민연금 통해 기업경영 개입하나

조선일보
입력 2018.05.31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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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복지 "대한항공에 주주권 행사"… 항의서한·경영진 면담 추진
"국민연금 수익성 떨어뜨린다" 명목… 재계선 "경영권 침해" 우려

대한항공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갑질 논란에 휘말린 대한항공 총수 일가에 경고하기 위해 공개서한을 보내고, 경영진 면담도 추진하기로 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30일 국민연금기금운용위 회의 모두발언에서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의 2대 주주로서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주주권을 행사하고자 한다"며 "기금운용본부로 하여금 공개서한 발송, 대한항공 경영진과의 면담 등을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이 개별 기업에 대한 항의 표시로 공개서한을 보내거나 경영진 면담을 추진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박 장관은 지난달에도 대한항공 사태와 삼성증권 배당 사고를 언급하며 "이런 사건들은 국민연금의 장기 수익성을 하락시키는 요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연금에 재벌 감시자 역할을 부여하기 위해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강화'를 대선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국민연금을 재벌 개혁 수단으로 삼을 향후 행보를 정당화하기 위해 대한항공을 시범 케이스로 삼으려 한다는 해석도 있다.

◇박 장관 행보, 적절한가 논란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구속됐다. 문 전 장관은 당시 민감한 사안이었던 두 회사 간의 합병을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의결권전문위원회에 맡기는 대신,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산하의 투자위원회에서 다루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보통 개별 기업에 대한 안건은 투자위원회가 다루지만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상위 기구인 의결권전문위에 맡기도록 돼 있다.

하지만 문 전 장관은 이를 무시하고 은밀히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박 장관이 대한항공과 관련해 주주권 행사를 거론한 것 역시 절차상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장관 역시 국민연금의 최고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국민연금의 운영 방향 등을 결정해야지, 개별 기업과 관련된 사안에 훈수를 두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건 역시 통상적으로 의결권전문위원회나 투자위원회에서 다룰 사안이기 때문이다.

◇실적보다 여론 향방 따라 움직이나

물론 이번 건은 특정인의 이익과 무관하게 문제가 있는 기업에 경영 정상화를 촉구했다는 점이나 공개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삼성물산 합병 건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번 결정이 기업 실적보다는 여론의 향방에 따라 정부가 움직인 측면이 커보인다는 점에서 재계는 우려하고 있다. 앞으로 정부가 국민의 공분을 사는 기업에 대해 국민연금을 이용해 손봐주기에 나설 경우 기업 경영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촉발한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이 알려진 이후, 지금까지 대한항공 주가는 12%가량 떨어졌다. 적지 않은 낙폭이지만, 하루 주가 상하한 폭이 ±30%인 주식시장에서 '주주 가치 훼손'을 거론하며 정부가 개별 기업 경영에 개입할 명분으로 삼을 정도인지는 의문이다. 지난해 대한항공은 사상 최대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는 등 최근 경영 실적도 나쁘지 않다.

박 장관의 이번 발언으로 국민연금 지분율이 높은 기업들은 벌써부터 좌불안석이다. 국민연금공단 공시에 따르면 지난 2016년 말 기준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국내 기업은 276곳에 달한다. 특히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우리나라 대표 기업의 경우 국민연금이 1대 혹은 2대 주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다. 최근 현대차가 국민연금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고 판단해 현대모비스와의 합병을 철회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기업들 입장에서는 앞으로 더욱 국민연금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정부 압박에 따른 지배구조 개편으로 오너 지배력이 약해지면서 국민연금 영향력만 높아지고 있다"며 "이렇게 가다가는 국내 경쟁력 있는 대기업들이 아무도 책임을 안 지는 주인 없는 회사인 포스코와 KT처럼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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