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9일(현지 시각) 중국산 첨단기술 품목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키로 한 무역 보복 정책을 원래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일시 완화됐던 미·중 무역전쟁의 전운이 다시 짙어지고 있다. 지난 17~18일 워싱턴에서 가진 제2차 미·중 무역협상에서 양국이 상호 관세 부과를 보류키로 합의했던 것과 배치되는 조치다. 중국은 즉각 반발하며 맞대응을 예고했다.
백악관은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 정책에 맞서고 있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할 500억달러 상당의 중국산 제품을 최종 선정해 다음 달 15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3일 첫 목록 발표 때는 중국의 10대 핵심 산업 육성 프로젝트인 '중국제조 2025'에 포함된 정보기술과 바이오 등 1300개 품목이 관세 부과 대상에 포함됐다. 성명은 미국의 중요 산업 기술을 획득하려는 중국 개인과 기업에 대해 투자 제한 조치를 이행하고 수출 통제를 강화할 것이라며, 이와 관련된 규제 대상 목록도 다음 달 30일 발표하겠다고 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도 이날 지난 3월 중국이 미국의 특허권을 침해하고 불공정 기술 이전 계약 등으로 지식재산권을 '도둑질'해왔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기한 분쟁 해결 절차를 계속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미 정부가 향후 일정까지 못 박으며 대중 강경책 강행 의지를 밝히자 중국 상무부는 29일 자정 가까운 시각에 긴급 성명을 내고 "이번 발표는 중국과 미국이 워싱턴에서 이룬 공동 인식에 명백히 위배되는 것" "미국이 어떤 조치를 취하든 중국은 인민의 이익과 국가의 핵심 이익을 지킬 자신과 능력 경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도 '한 입으로 두 말하는 미국에 중국은 함께 춤추지 않겠다'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미국이 미·중 무역협상의 합의를 열흘 만에 뒤집는 조치를 발표한 것에 대해 여러 분석이 나왔다. 우선 트럼프 행정부가 손해 보는 협상을 했다는 비판에 부담을 느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 직후 이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언론과 의회에서는 연일 "트럼프가 시진핑에 속았다"는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최근 미·북 정상회담의 성사를 방해하는 배후로 중국을 지목했다는 점에서 중국에 재차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코넬대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에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자세는 미·북 정상회담이 거의 무산될 뻔한 사태에 중국이 일조했다는 (미국의) 생각을 일정 부분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중 무역협상에서 줄곧 불협화음을 내온 스티브 므누신 미 재무장관 등 협상파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 등 대중 강경파의 대립에서 강경파가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다시 잡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윌버 로스 미 상무부 장관이 무역협상 후속 조치를 마무리하기 위한 다음 달 2~4일 중국 방문을 앞두고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첨단 산업 분야 전공 중국 유학생의 비자 기간을 줄이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AP통신 등이 이날 보도했다. AP는 미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중국 정부가 핵심 산업으로 지정, 육성하고 있는 로봇, 항공, 첨단 제조업 등 특정 분야 전공 중국 유학생의 비자 기한을 1년으로 제한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