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다가 의료진 과실로 이른바 ‘식물인간’이 돼 버린 조모씨. 2년 7개월째 의식불명 상태로 누워있다.

2015년 10월 4일 새벽 3시 30분쯤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입원실 정수기 앞에서 조모(47)씨가 쓰러진 채 발견됐다. 입에는 거품이 가득했다. 당직 간호사는 “불과 2분 전 멀쩡히 걸어서 물을 뜨러 갔었다”고 했다.

당직의사 등이 CT(컴퓨터 단층촬영) 검사를 하며 응급조치를 했다. 30분쯤 지나자 조씨는 차츰 회복되는 듯했다. 건드리면 눈을 깜박이거나 자극을 주면 일어나 단순한 지시에 따르기도 했다.

새벽 4시 50분쯤 응급 연락을 받고 달려온 신경과 의사 박모씨는 검진 후 “뇌경색이 의심된다”고 진단했다. 전화로 가족의 동의를 구한 뒤 정맥주사로 혈전용해제를 놓았다. 막힌 뇌혈관을 뚫어주는 조치다. 이어 박씨는 MRI(자기공명영상) 등 정밀검사를 위해 조씨를 검사실로 옮겼다.

MRI 검사 결과가 나온 오전 6시15분쯤. 뇌경색은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앞선 CT 검사에서 없었던 다발성 뇌출혈이 보였다. 뇌경색이 없는 사람에게 혈전용해제를 잘못 주사하면 나타나는 부작용이었다. 이때부터 조씨는 사실상 ‘식물인간’이 됐다. 이 병원에 입원한 지 딱 사흘 만의 일이다. 그는 2년 7개월째 가족도 알아보지 못한 채 누워만 있다.

입원 3일만에 낙상사고, 응급치료 후 뇌출혈
法 "정밀진단 없이 무리한 정맥주사... 과실"
환자 가족 "진심어린 사과라도 받아봤으면"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재판장 유석동)는 최근 조씨 가족이 “의료과실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며 낸 소송에서 “의료진의 과실이 인정된다”며 “삼성서울병원은 조씨 측에 2억 2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조씨의 (넘어진 직후) 증상은 뇌경색 외에 다른 원인으로 발생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면서 “응급 상황에서 뇌경색을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MRI 검사가 필요한 데다 검사할 시간이 충분했는데도 의료진은 이를 실시하지 않았다”고 병원 측의 과실을 인정했다. 또 “의사는 환자가 심각한 저혈당 또는 고혈당인 경우 절대로 시행하면 안 되는 ‘혈전용해술’을 혈당검사 결과도 확인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주사를 투여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혈전용해술 시행 전에 실시한 CT 검사에서는 뇌출혈을 의심할 만한 이상 증상이 없었고, (혈전용해술) 시행 이후 다발성 뇌출혈이 발생해 후유증이 나타난 점 등으로 미뤄 의료과실과 후유증 사이의 인과관계도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의사의 과실이 인정됐는데도 병원 측의 배상 책임은 30%에 그쳤다. 법원은 “혈전용해술 시행 당시 조씨의 건강 상태와 의료과실의 정도 및 결과, 의료사고 후 병원의 노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했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청사

조씨 가족이 재판에서 주장한 병원 측의 잘못은 네 가지다.
①입원 환자인 조씨가 넘어지는 안전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병원이 주의·보호 의무를 충분히 하지 하지 못했다.
②쓰러진 조씨를 발견했을 당시 뇌경색이 아닐 수도 있는데 정확한 진단 없이 혈전용해제를 놓는 바람에 뇌출혈이 발생했다.
③뇌출혈이 의심되면 즉시 혈전용해제 투여를 중단해야 하는데 계속 약물을 넣어 뇌출혈을 악화시켰다.
④조씨에 대한 뇌경색 진단 이유와 혈전용해제 투여의 위험성 등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이에 따라 조씨 측은 이미 들어간 치료비와 간호비 등을 종합해 조씨에게 6억7700여만원을 배상하고, 조씨의 부모에게 2000만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병원이 안전사고 위험을 방치하거나, 환자 보호자에게 설명의 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조씨에게 뇌출혈이 발견됐을 때 이미 혈전용해제는 모두 투여된 상황이어서 의사에게 중단하지 않은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봤다. 이에 따라 법원은 조씨에게 청구액의 31% 수준인 2억1400여만원을, 조씨 부모에게는 25%인 500만원씩을 위자료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조씨의 누나(49)는 “멀쩡하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저 모양이 됐고, 의사의 과실도 분명해졌는데 병원 책임이 30%밖에 안된다고 하니 눈물 밖에 안 나온다”며 “지금이라도 병원이나 의사로부터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다.

삼성서울병원 전경.

의료 소송서 피해자 승소는 29.1%에 그쳐
"환자 숨지게 해도 의사 자격은 계속" 논란
의료분쟁 급증… 의료 책임 확대 움직임도

조씨처럼 의료사고가 법적 분쟁으로 이어졌을 경우 피해자가 제대로 보상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4~2016년 의료소송 2854건 중 피해자 주장을 완전히 인정한 경우는 33건으로 1.2%에 불과했다. 부분적으로라도 피해 사실을 인정해 일부 보상을 받은 경우도 29.1%(831건)뿐이다. 한 중견 변호사는 “병원과 의사가 환자를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낫게 하려다 생긴 일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재판은 이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된다”면서 “의료과실이 인정돼도 100% 배상책임을 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 30%~70% 수준”이라고 했다.

의료사고를 낸 의사가 신분상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흔하지 않다. 의사는 의료법상 낙태와 진료비 사기, 허위진단서 작성 등으로 ‘금고(禁錮)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거나, 면허증 대여 등 부정한 의료 행위를 해야 의사 자격이 취소되기 때문이다. 조씨의 경우처럼 치료 중 오진이나 과실만으로는 환자가 식물인간이 되어도, 혹은 사망에 이르더라도 의사직은 유지된다는 이야기다.

2014년 가수 신해철씨의 수술을 맡아 숨지도록 한 의사 강모(48)씨는 사고 발생 3년 7개월여 만인 이달 유죄가 확정돼 의사 자격을 잃었다. 강씨 역시 신씨를 숨지게 한 의료과실 책임이 아닌, 신씨의 의료기록을 인터넷에 무단으로 공개한 책임 때문에 의사 면허가 취소됐다. 의사 면허는 취소가 돼도 1~3년이 지나면 다시 면허를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의료분쟁 상담 및 조정 신청 현황

의료사고에 따른 분쟁은 갈수록 느는 추세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접수된 의료분쟁 상담 건수는 2015년 3만9793건에서 2017년 5만4929건으로 2년 만에 38%가 증가했다. 의료분쟁 조정신청 건수는 같은 기간 1691건에서 2420건으로 43% 늘었다.

최근 국회에서는 이른바 ‘신해철법’, ‘한예슬법’ 등으로 불리는 의료사고 피해 구제와 관련된 법이 잇따라 발의되거나 개정됐다. 의료기관이나 의사의 책임을 확대하고,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최근 2~3년 사이 법원에서도 병원이나 의사의 책임을 무겁게 인정하는 판결이 늘고 있다”면서 “법원은 피해자가 주장한 부분에 대해서만 판단하기 때문에 최대한 꼼꼼하게 피해 내용을 주장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