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은 4·19 계승한 근대화 혁명"

조선일보
  • 이선민 선임기자
    입력 2018.05.30 03:01

    '4·19와 5·16' 펴낸 김광동 박사 "둘의 공통점은 번영과 반공주의"

    김광동 박사는 “4·19와 5·16은 부정과 단절보다 계승과 연속의 측면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광동 박사는 “4·19와 5·16은 부정과 단절보다 계승과 연속의 측면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5·16은 4·19의 부정(否定)'이라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다. 이승만 정부의 독재에 대한 저항으로 학생이 중심이 돼 4·19혁명이 일어났고, 군부 일부 세력이 일으킨 5·16쿠데타로 민주주의가 다시 후퇴했다는 것이다.

    '4·19와 5·16: 연속된 근대화 혁명'(기파랑)을 펴낸 김광동(55) 나라정책연구원장은 이런 통념을 비판하며 4·19와 5·16은 우리 민족이 직면했던 근대화와 산업화란 역사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연속적으로 진행된 혁명이었다고 주장한다. 5·16이 4·19의 계승이었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4·19와 5·16을 민주주의란 잣대로 보는 것은 당시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고 학자들이 왜곡된 인식으로 역사를 재단하며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말했다. 고려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김 원장은 '(근대)국가 건설(nation building)'이란 관점에서 한국 현대사를 재조명해 왔다.

    김광동 박사는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 때 야당인 민주당이 내걸었던 '못살겠다, 갈아보자'란 선거 구호에 주목한다. 독재에 대한 거부로 이해되는 이 구호가 실제로는 미국 원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면서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제 현실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승만 정부도 1955년 부흥부를 만들고 수출 확대에 노력했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급속한 변화를 이끄는 정치적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4·19 이후 집권한 민주당 정부가 경제건설에 착수한 것은 당연했다. 윤보선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빈곤 해방의 기점을 만드는 것'이 과제라고 했고, 통치의 중심인 장면 총리는 "당면한 민족적 과제인 경제 건설을 수행해야 할 중대한 책임을 통절하게 느낀다"고 했다. 1960년 12월 장면 총리가 직접 본부장을 맡은 국토건설본부가 발족했고, 발전소와 도로 건설 사업이 계획됐다.

    그러나 민주당 정부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드러냈다. 시위가 일상화하고 급진 세력이 용공(容共)적인 통일운동을 전개했다. 이승만 정부 말기부터 근대화 지향 쿠데타를 모색하던 군부 엘리트들이 혼란을 빌미로 5·16을 일으켰다. 당시 영향력이 컸던 지식인 잡지 '사상계'는 "무능하고 고식적인 집권당과 정부가 수행하지 못한 4·19혁명의 과업을 새로운 혁명 세력이 수행한다는 점에서 5·16혁명의 적극적 의의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정권을 장악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도탄에 빠진 민생고를 해결하여 급속한 경제 부흥을 이룩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그리고 시행착오를 거친 뒤 공화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수출 주도 경제발전 정책을 채택하고 사회를 개방적인 글로벌 체제로 전환했다.

    김광동 박사는 4·19와 5·16, 민주당 정부와 공화당 정부의 공통점을 '번영 민족주의'와 '반공주의'에서 찾는다. 나라를 빼앗긴 뒤 '저항'에 놓였던 민족주의의 중심이 광복과 정부 수립, 6·25전쟁을 거치며 '번영'으로 이동했고, 4·19와 5·16은 이를 충실히 지향했다는 것이다. '반공을 국시(國是)의 제1의(義)'로 선언한 5·16은 물론 4·19 역시 반공 정신의 계승을 명백히 했다. 김광동 박사는 "4·19는 근대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결집해냈고, 5·16은 산업화 체제의 길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양자는 하나이자 두 개의 연속된 혁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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