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페미니즘은 왜 남성을 혐오하나" 페미니즘 전문가 4인에게 물었다

입력 2018.05.28 14:45 | 수정 2018.05.29 10:46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 가능한 ‘대학로 집회’
남성혐오에 몰두하는 한국의 페미니즘?
"개념녀 vs. 꼴페미 이분법이 여성차별"
“페미니즘 발전 과정서 불가피”

지난 19일 “경찰의 몰카(몰래카메라) 수사가 성별에 따라 편파적”이라고 주장하는 서울 대학로 집회에 1만여명이 모였다. 집회에는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할 수 있다”는 조건이 하나 붙었다. 남성 몰카(몰래 카메라)피해자는 물론이고 트렌스젠더(성전환자)·인터섹스(성별이 명확하지 않은 사람) 등 성소수자 참여도 막은 것이다. “페미니즘이 성 소수자(LGBT) 같은 사회적 마이너 계층과 연대한다”는 통상적 믿음에 반하는 것이었다.

‘차별’의 문제점을 말하면서, 또 다른 ‘차별’을 행하는 것은 정당한가. 한국의 페미니즘은 정말로 ‘남성혐오’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페미니즘 전문가 4인의 의견을 들어봤다. 답변을 한 전문가는 오찬호 작가,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가나다 순)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에 여성 1만명이 모인 ‘몰카 편파수사 규탄’ 집회가 열렸다./최영하 인턴기자
Q. 이번 시위에서 성(性)소수자의 참여를 배제했다.
조한혜정 교수= “현재 사회운동에서 ‘성소수자 배제’가 운동의 성숙을 재는 주요 척도가 된 상황이어서 민감한 지점이 있지만 흑인 해방 운동이 일었을 때 백인의 출입을 막은 경우들이 적지 않았다. 사회운동은 개인들이 모여서 벌이는 움직임이다. 그래서 다양할 수 밖에 없고 좌충우돌하면서 변화를 만들어간다. 특히 현재 여성운동 단계는 단일한 목소리로 참정권과 노동권을 요구했던 단계를 지나서 사회 전반에 진출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위기를 느낀 남성들의 백래시(반격)가 일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저런 것을 감안하면 참여를 배제하는 모임도 있을 수 있다. 이런 현상을 곧바로 남성혐오로 연결시키는 시각이 실은 문제적이다.”

오찬호 작가= “한국의 페미니즘 내부에서도 성소수자를 챙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의견이 갈린다. 일부 여성들은 “한국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성소수자들의 고통의 크기가 다르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남성 성소수자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여성으로 참가자격을 제한한 것은 여성들의 고충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여성들이 오죽하면 저럴까’라고 생각해 봐야 한다. ”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 “페미니즘의 한 갈래라고 본다. 현재 페미니즘 지형은 여성해방운동으로 페미니즘을 정의하는 ‘급진 페미니즘’과 범(汎)차별반대운동·포괄적 인권운동으로 페미니즘을 정의하는 ‘퀴어 페미니즘’으로 나뉘어져 여러 담론이 오가고 있다. 이번 집회는 여성의제에 집중한 ‘급진 페미니즘’ 성격을 띄고 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 “혐오를 반대하고 소수자의 인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페미니즘’이긴 하다. 하지만 ‘여성만을 위한 페미니즘’도 여러 페미니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Q. 미러링(혐오 뒤집어 보여주기)가 페미니즘에 도움 될까

전문가들은 페미니즘에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남성주의적 사고라고 지적했다. /조선DB
‘미러링(Mirroring·혐오 뒤집어 보여주기)’은 한국 페미니즘의 최신 ‘화두’다. 이를테면 여성 성기가 들어간 욕설을 남성 성기로 뒤바꾸는 식이다. 지난 19일 집회에서는 ‘남경(남자 경찰)들아 웃어, 분위기 ㅈ창내지 말고’라고 적힌 미러링 피켓이 등장했다. 남경은 ‘여경’이라는 말의, ‘ㅈ창’은 ‘ㅆ창’이라는 용어의 미러링이다. 더 나아가 남성 혐오 사이트 ‘워마드’는 장애인·성소수자 같은 사회적 약자도 미러링의 대상으로 설정한다.

이택광= “워마드의 미러링은 페미니즘의 전체 흐름에서 봤을 때 미미할 정도지만, 테러지향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전략적으로 이것이 별로 좋지는 않다. 이제 어느 정도 페미니즘이 대중화됐기 때문에 (미러링이 아닌)다른 방식으로도 설득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윤김지영= “미러링 전략은 그동안 여성혐오가 어떻게 이뤄져 왔나를 보여준다. 미러링은 분노와 유머가 섞인 것으로 ‘저항 에너지’의 동력이 됐다. 미러링 전략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미러링이 비추고 있는 여성혐오 모습부터 깨부수는 것에 동참하는 것이 어떨까. 그것이 미러링 전략을 멈추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오찬호= “결국에는 페미니즘 운동을 잘하기 위한 것이다.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이 배제되었다고 주장하는 가운데서 누군가는 우회로(온건파), 누군가는 직진노선(강경파)를 택하는 것일 뿐이다. 그간 여성을 평등하게 대했다면 (미러링을) 불편하게 느낄 필요가 없다.”

조한혜정= “페미니즘은 인류사상 가장 오래된 운동이다. 그리고 분노는 터져나올 때는 다양한 방식으로 터져나온다. 그럴 때 대부분은 불편함을 느끼겠지만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페미니즘은 자신의 몫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에 의해 백래시를 당하고 있는데 언론은 주로 그런 갈등상황을 보도하는 편이다. 페미니즘을 여혐 남혐 프레임에 가두거나 일정한 이미지로 고착화시키려는 움직임도 실은 백래시에 속한다. ‘갑질’에서부터 ‘혐오’에 이르는 괴롭힘의 문제를 제대로 풀어내야 한다.”

Q. 한국의 페미니즘이 ‘여권(女權) 신장’보다는 ‘남성혐오’에 가깝다는 지적도 있다
‘페미니즘=남성혐오’라는 등식도 논란거리다. 최근 개그맨 김기수는 ‘팬’을 자처한 여성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가 곤란에 빠졌다. 이 여성에 소셜미디어(SNS)에 김기수와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눈깔 ‘재기’할 뻔 했다”는 남성혐오적 표현을 쓴 까닭이다. ‘재기’는 시민단체 ‘남성연대’ 대표였던 고(故) 성재기씨를 지칭하는 것으로, 남성혐오자들 사이에서는 “죽는다”는 조롱의 의미로 쓰인다. 여권(女權) 신장을 목적으로 하는 페미니즘이 남성혐오에 소모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떨까.

오찬호= “(최근 페미니즘 집회의 거친 분위기는) 과도기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운동이 기존 권력 구조를 파괴하는 행위라 과정이 거칠 수밖에 없다. 모든 페미니스트가 여기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방향이 잘못됐다고 하면 안 된다. 일부에서 ‘페미니즘이 (남성혐오로) 왜곡됐다’는 주장을 한다. 이것은 남성들이 습관적으로 하는 소리일 뿐이다. ”

이택광= “ 페미니즘이 점차 대중화된다면 지금의 (남성혐오) 움직임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1980년대 민주주의를 촉구하던 운동권에서 화염병 던지는 등 과격한 주장(행동)을 펼쳤는데, 이는 합리적인 논의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지금의 페미니즘 과격행동도) 일시적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조한혜정= “역사의식이 없으면 그렇게 단세포적으로 연결을 하게 된다. 여성운동의 첫 단계가 여권운동이라면 두 번째 단계는 일상의 변화를 이루어내려는 포괄적인 운동이다. 부부간, 애인간, 직장 동료나 상사간에 제대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운동으로 발전하는데 그 지점에서 좋아지는 기미가 안 보인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지 30년이 지났는데도 여자들은 직장에서 성폭력을 당하고 있다. 그래서 미투 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다종다기한 갑질 문화를 바꾸어내려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윤김지영= “남성혐오라는 개념은 현사회 구조에서 성립될 수 없지만 남성혐오는 여성운동의 ‘전술’이다. 그간 사회에서는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이 되고 싶어 모방한다고 간주했다. 여성들은 남성을 선망해 모방할 수만 있을 뿐 감히 혐오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남성혐오라는 전술은 남성이 더이상 사회의 표준도, 선망의 대상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남성에 저항하겠다는 여성운동 표현인 셈이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 앞에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집회’가 열렸다. / 최영하 인턴기자
Q. 올바른 페미니즘의 방향이 있을까.
오찬호= “지금 페미니즘이 왜곡됐다고 하는 것은 많은 남성이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다. (남성중심적)권력구조를 파괴하는 행위니까 그 과정에서 충돌하는 지점이 발생할 수 있다. 방향이 왜곡됐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지금 나오는 모든 페미니즘 운동은 성차별·불평등에 저항하기 위한 ‘훈련’이라고 본다.”

윤김지영= “올바른 페미니즘과 올바르지 못한 페미니즘, 개념녀와 ‘꼴페미(꼴통 페미니스트의 준말)’ 등 이분법은 남성주의적 사고에서 기인한다. 올바른 페미니즘에서 그 ‘올름’은 누구에 의해 정의되는 것인가. 또 그런 ‘올바름’ 자체가 이미 남성중심적으로 개편된 건 아닌가를 질문하는 게 페미니즘이다. 여성운동이 모든 사회적 소수자들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는 여성해방에 집중하는 여성을 이기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려 여성운동을 폄훼하는 것이다. 올바른 페미니즘을 나누는 건 의미가 없다. 페미니즘은 남성특권구조를 붕괴시키기 위한 치열한 저항운동이다.”

이택광= “페미니즘은 여성의 목소리를 이론화한다는 점에서 옳고 그름을 따질 수가 없다. 다만 시대와 장소에 따라 페미니즘이 달라진다고 본다.”

조한혜정= "올바르다 아니다‘를 말하는 사람을 ’꼰대‘라고 다들 기피한다. 지금은 스스로 사유하는 시민들이 모여서 부당하고 불편한 제도를 바꾸어가는 성숙한 시민의 시대이다. 페미니즘은 원래 여성과 남성이 제대로 공생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게 기본 정신이다. 변화를 이루어내기 위해 다양한 시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운동을 벌이게 된다. 현재 여혐 남혐 현상은 신자유주의적 승자독식 체제가 만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루저로 만드는 이 체제에서 여성과 남성 모두 피해자이고 그래서 서로 협력해야한다. 그점을 간파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를 위한 움직임이 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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