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동안 팔리는 '100년 前 디자인'

조선일보
  • 김상윤 기자
    입력 2018.05.28 03:00

    성곡미술관 '독일디자인 100년'展
    20세기 초 '싸구려' 인식 극복하려 현대 산업디자인 기초 만든 독일
    지금까지 대량생산 중인 제품도

    전시된 의자와 테이블, 주전자를 무심코 본다.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공산품 디자인이 요즘 시내 생활용품점이나 백화점에서 본 것 같다. 작품 연도를 보는 순간 놀란다. 멀게는 100년도 넘은 디자인 제품들이다.

    서울 성곡미술관에서 열리는 '독일디자인 100년' 전에서는 독일디자인연맹(Deutscher Werkbund)이 설립된 이후 100년 동안 제작된 가구, 공예품, 식기, 건축 모형, 드로잉 등 360여 점을 한곳에서 볼 수 있다.

    1909년에 독일 디자이너 페터 베렌스가 디자인한 전기 주전자.
    1909년에 독일 디자이너 페터 베렌스가 디자인한 전기 주전자. 지금 판매해도 괜찮을 만큼 독특하면서도 무난하다. 베렌스는‘한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들을 통합적으로 디자인해야 한다’는 CI(기업 이미지) 개념을 확립한 사람으로 꼽힌다. /성곡미술관
    CI(기업 이미지) 개념을 처음 확립한 것으로 유명한 건축가 겸 디자이너 페터 베렌스 외에 20세기 최고 건축가로 언급되는 발터 그로피우스, 건축가 겸 디자이너 헤르만 그렛쉬, 그래픽 디자이너 프리츠 헬무트 엠케 등 20세기 산업디자인계 거장으로 꼽히는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의 작품이다.

    1900년대 초반 유럽에선 '독일제는 싸구려이며 볼품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독일이 산업혁명의 후발 주자이면서 디자인 분야에서도 뒤처졌기 때문이다. 1907년 설립된 독일디자인연맹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당대의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합심해 만든 조직이다. 이들이 '소파 쿠션에서 도시 건설까지, 모든 사람에게 좋은 디자인을 하자'며 내놓은 결과물들은 오늘날 산업디자인의 시작점이 됐다는 평을 받는다.

    전시장은 시기에 따라 7개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1900년대 초 설립 직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시점까지의 초반부에선 20세기 초 산업디자인계의 성과를 엿볼 수 있다. 19세기 중반 급속한 산업화로 공장에서 만든 대량생산품은 겉모습과 품질이 조잡했다. 이 시기 독일디자인연맹은 '좋은 형태(Die Gute Form)'를 기치로 내걸었다. 대량생산품이라 해도 매력적이고 쓸모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디자인연맹이 주도해 1932년 오스트리아 빈에 지은 주택단지
    독일디자인연맹이 주도해 1932년 오스트리아 빈에 지은 주택단지. /성곡미술관
    벽걸이 시계, 식기나 후추통 등 부엌 소품, 커피잔 세트를 볼 때는 당최 옛날 물건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가 큼지막한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레코드 플레이어를 보는 순간, 최소 수십 년에서 길게는 100여 년 전 물건이란 점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전시품 중에선 지금도 수십 년째 대량생산 중인 것도 있다. 독일 곳곳에 지어진 주택단지도 오늘날 못지않은 디자인을 자랑한다.

    나치 집권기 해체됐다가 재건된 연맹은 1960년대부터 "우리는 반세기 넘도록 그럭저럭 좋은 유리컵을 만들었지만, 그새 물은 그냥 마시기도 어려워졌다"는 한스 슈비페르트 회장의 말과 함께 환경문제로 관심을 돌린다. 1980년대 들면서는 분열과 위기를 맞는다. 독일 디자인이 세계적 수준에 올라서자 존재 의의를 잃어버린 것이다. 당시 연맹 회장이었던 건축가 율리우스 포제너가 남긴 말에서 이들의 고민이 드러난다. "여전히 디자인연맹이 필요한가?"

    1920년대 2500명이 넘었던 연맹 회원 수는 현재 약 1500명. 영향력은 전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유럽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전시는 8월 26일까지. (02)737-8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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