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보수정권 때 입사한 게 죄인가요?"… 직원 찍어내는 MBC

조선일보
  • 김은중 기자
    입력 2018.05.26 03:00

    新 블랙리스트

    정권 바뀌자 무더기 해고
    법 위에 정상화委·감사국

    지금 공영방송 MBC엔 '블랙리스트'가 있다. 적폐 낙인이 찍히는 경우의 수는 비(非)언론노조원, 2017년 총파업 불참자, 전(前)·전전(前前) 정권 시절 임원 등 세 가지. 하나라도 해당되면 사측의 조사와 압박이 뒤따른다. 취재원 공개를 강요하고 입사 경위까지 들여다본다. 이메일 열람과 사전 동의 없는 개인 경력 조회 등 탈법(脫法)도 자행된다. 일부 직원은 사측의 조사를 거쳐 해고를 당하거나 중징계를 통보받았다. "고통받는 해직 언론인의 이미지로 대중에게 알려졌던 최승호 사장이 '해고의 피바람'을 일으키는 당사자가 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전 MBC 계약직 아나운서 10명이 지난 2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부당해고’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독자 제공
    "적폐가 아니다" 외쳤지만 해고

    "아나운서 선배님들,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우린 적폐가 아닙니다!"

    지난 2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선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녀 10명의 호소가 이어졌다. 2016년과 2017년 MBC에 입사한 계약직 아나운서들이다. MBC는 2013년 이후 신입 공채를 실시하지 않고, 계약직(1년 단위 갱신)을 선발해 부족한 인력을 충원했다. 2016년 입사자들은 지난달 21일, 2017년 입사자들은 지난 21일 각각 해고됐다. MBC에는 3개의 노조가 있다. 그중 최대 노조인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의 파업에 불참하고 보수 정권 아래에서 방송을 했다는 게 이들의 원죄(原罪)가 됐다.

    '부당 해고'와 '정당한 계약 만료'라는 주장이 엇갈린다. 해고된 아나운서들은 "기존 정규직 전형 과정과 똑같은 시험(경쟁률 1700대1)을 거쳐 선발됐고, 사측이 여러 차례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고 말한다. 사측은 이에 대해 "해고가 아닌 정당한 계약 해지"라고 반박했다. MBC 내부 사정에 밝은 방송계 한 관계자는 "최승호 사장 등 현 MBC 수뇌부는 구(舊)체제에서 기존 아나운서들을 탄압하고 내몰기 위해 계약직들을 뽑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의 존재 자체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MBC 정상화를 바라는 우리가 선배들의 자리를 빼앗은 '적폐 세력'으로 낙인찍혔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들 대부분은 정치색이 옅은 프로그램에서 활동했고 노조 가입 의사를 밝혔다. 지난 1월엔 사내에 '파업에 참가하지 못해 사죄드립니다'라는 내용의 반성문을 걸었다. '우리 존재에 대해 사과드린다'는 표현까지 나왔다. 하지만 해고를 피하지 못했다.

    MBC 정상화위원회의 폭주

    먼저 유탄을 맞은 건 이전 보수 정권 때 고용된 80여 명의 경력직 기자들이다. 사내에서 '시용(試用) 기자'라 불리는 이들은 지난해 12월 최승호 사장 취임과 동시에 취재 업무에서 배제됐다. 중계차를 타거나 사내 기기실로 보내져 사실상 '유배 생활'을 하고 있다. 대량 해고의 조짐도 보인다. MBC는 지난 18일 인사 발령을 내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혐의로 최대현 아나운서와 권지호 카메라 기자를 해고했다.

    MBC판 적폐 청산의 중심엔 올해 초 출범한 '정상화위원회'가 있다. '공영방송 장악에 대한 모든 것'을 조사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일부 직원은 '보복위원회'라고 조롱한다. MBC는 상법상의 주식회사다. "정부의 진상조사위원회와 달리 진상조사를 행할 권한이 없다"는 법조계 일각의 지적이 있었지만 강압적인 조사는 몇 달째 지속되고 있다. 위원회 업무를 전담하는 사무보조 직원까지 채용했다.

    지나친 무리수를 두어 물의를 빚기도 한다. 이달 3일 위원회 소속 직원 2명이 인천의 한 병원에 들이닥쳤다. 이들이 찾은 전모 기자는 비언론노조원으로, 전직 도쿄 특파원으로 있다가 올해 3월 귀국했다. 전임 사장이 임명한 특파원 12명을 최승호 사장이 일제히 소환했기 때문이다. 그는 허리 디스크 치료를 위해 병가를 신청했지만 사측은 거부했다. '실제로 아픈지 의심된다'며 국내 병원까지 찾아가 '진짜 아픈 게 맞느냐'며 의혹을 제기했다고 한다. 대기발령 상태인 한 MBC 직원은 "지난달엔 일본 병원에까지 '진단서 발급할 자격이 있느냐'고 문의해 의사가 크게 화냈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했다.

    위원회와 보조를 맞추는 감사국도 탈법을 마다하지 않는다. 경력기자들의 입사 경위 전반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다른 언론사 인사 담당자들에게 메일을 보내 이들의 경력 검증을 요청한 사실이 최근 확인됐다. 당사자 동의 없는 개인 정보 제공은 위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나서야 대상자들을 상대로 '개인 정보 제3자 제공 동의서에 서명하라'며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지난 3월엔 박영춘 감사가 "감사 과정에서 40여 명의 사내 메일을 들여다봤다"고 털어놓았다. 최승호 사장 등 9명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시청률은 최악

    사측이 외치는 '적폐 청산'과 달리 MBC에 대한 시청자들의 지지는 추락하고 있다. 지난해 5월 1~13일 6.23%였던 MBC 뉴스데스크 평균 시청률은 올해 같은 기간 3.92%까지 떨어졌다. 잡음도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한 예능 프로가 부주의하게 세월호 참사 장면을 사용해 사장이 사과하고 진상 조사까지 뒤따른 적도 있었다. 이순임 공정노조(선임기자 위주의 제2노조) 위원장은 "시청률이 역대 최악으로 떨어져 광고 판매에서 1000억원대 적자가 예상된다"며 "최승호 사장이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최승호 사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직도 과거에 벌어진 많은 일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며 "정리할 건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사내 적폐) 청산 작업이 당분간 계속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은 "민노총 언론노조 아래 하나가 되지 않는 직원들에 대한 전체주의적 숙청"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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