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별밤 내려앉자… '별 마을' 다시 반짝이다

입력 2018.05.25 03:28

[뜬 곳, 뜨는 곳] 경북 영천 '별별미술마을'

90가구 모여 살던 집성촌, 마을 전체를 미술관처럼 조성
벽화 그리고, 조각 세우고… 작가 50여 명이 마을 곳곳 새단장
"북적이는 사람들로 마을 생기 되찾아"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 ~1890)는 별밤을 사랑했다. 별밤 아래 론강을 산책하는 연인을 담은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 over the Rhôn, 1888)과 굽이치는 사이프러스가 별을 휘감아도는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1889)을 그렸다.

고흐가 사랑한 별은 130년 후 '별의 고장'인 경북 영천에 내려앉았다. 영천은 전국에서 별이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국내 최대 구경(口徑, 1.8m)의 반사망원경이 있는 보현산 천문대가 있다. 별빛테마마을과 별빛야영장이 들어섰다. 시의 야간기행은 '별빛투어', 공공자전거는 '별타고'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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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경북 영천시 화산면 별별미술마을 초입의 ‘반 고흐 골목’에서 주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벽화를 감상하고 있다. 골목 담장을 따라 빈센트 반 고흐가 별밤을 주제로 그린 두 작품이 연달아 그려져 있다. 전국에서 별이 가장 잘 보여 ‘별의 고장’으로 알려진 영천의 정서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김동환 기자

고흐의 '별밤' 두 작품은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와 화산리, 화남면 귀호리 일대에 조성된 '별별미술마을' 초입에서 볼 수 있다. 지난 2016년 경북대 예술대학 학생회와 총동아리연합회에서 긴 골목을 따라 그려 넣었다. 이 골목이 '반 고흐 골목'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전국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복숭아 농사를 주로 하던 90가구 작은 마을이 '지붕 없는 미술관'이 된 것은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미술 마을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부터다. 원래 이곳은 500년 전부터 안동 권씨, 영천 이씨, 평산 신씨 가문의 집성촌이었다. 인구가 점점 줄면서 쇠락해가자 마을 전체를 미술관으로 꾸미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문체부에서 적극 지원에 나서면서 5년간 국비·도비·시비를 합해 55억원이 들어갔다. 작가 50명이 마을의 자연과 역사를 살린 조각·그림·디자인·사진 작품 45개를 마을에 심었다.

귀호마을길에 세워진 김용민작가의 ‘저 하늘 별을 찾아’.
귀호마을길에 세워진 김용민작가의 ‘저 하늘 별을 찾아’.

곳곳에 '별'을 살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농수로를 따라 별자리를 새겼고, 계단을 타고 올라 먼 하늘에 별을 다는 소년상을 세웠다. 개울둑의 별 조형물은 바람이 불 때마다 챙챙 맑은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저수지에 내려앉은 별을 묘사한 박용석 작가의 작품 '별의별'도 있다. 경북대학교 학생 40여 명은 고흐의 '별밤'에 이어 지난 2월 가상리 골목 15m 구간에 '추상미술의 아버지'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 작품들을 새로 그려넣었다.

마을은 다섯 개의 길을 따라 꾸며졌다. '걷는길'에는 전체 작품의 3분의 2 정도가 몰려 있다. 빈집을 노란 새장으로 둘러싼 손몽주 작가의 '새장 속의 새'가 대표작이다. '바람길'에서는 은빛 풍선이 달린 노란 버스정류장을 만난다. 먼 곳으로 떠나는 설렘을 표현한 권순자 작가의 작품 '풍선을 타고 떠나는 환상여행'이다.

임진왜란 때 권응수 장군(선무 2등공신)이 의병을 일으켰던 스무골 주변의 '스무골길'에서는 자연과 어울려 살자는 남선모 작가의 조형물 '바람소리'가 눈에 띈다. '귀호마을길'에는 조선 학자 귀애 조극승(1803∼1877)의 귀애고택(龜厓古宅)과 귀애정 등 문화유산과 작품이 어우러진다. 마을 길의 시작이자 끝 지점인 '도화원길'에는 넓은 복숭아 밭이 펼쳐져 있다.

미술마을의 중심은 시안미술관이다. 1999년 폐교된 화산초등학교 가상분교를 개·보수해 2004년 문을 열었다. 학교 운동장을 잔디밭으로 바꾸고 조각공원으로 꾸몄다. 지난 11일 딸을 데리고 미술관을 둘러본 곽진숙(42·서울)씨는 "농촌 풍광 주위로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아이가 보기에도 정서적으로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불리는 별별미술마을의 시안미술관 잔디밭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뛰놀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버스 정류장을 작품으로 꾸민 권순자 작가의 ‘풍선을 타고 떠나는 환상여행’. 정류장 지붕에 풍선을 달아 떠나는 이들의 설렘을 표현했다.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불리는 별별미술마을의 시안미술관 잔디밭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뛰놀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버스 정류장을 작품으로 꾸민 권순자 작가의 ‘풍선을 타고 떠나는 환상여행’. 정류장 지붕에 풍선을 달아 떠나는 이들의 설렘을 표현했다. /김동환 기자

마을이 예술을 입고 되살아나며 주민 수익도 늘었다. 천연염색, 손바느질, 자수, 제빵, 목공 등의 체험장이 생기고, 마을 주민들이 만드는 간식과 농·특산물 매장이 인기다. 시안미술관 인근에서 복숭아를 재배하는 이희진(65)씨는 어린이 키 높이에 맞게 복숭아를 딸 수 있도록 나무를 V자 형태로 심었다. 이씨는 "복숭아 수확철인 7~8월에는 복숭아를 직접 수확하거나 사가겠다는 관광객이 많다"며 "주말과 휴일이면 마을이 외지 사람들로 생동감을 되찾는다"고 말했다.

마을은 오래전 추억도 간직하고 있다. 옛 마을회관 건물을 활용한 '우리 동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1966년 화산동부초등학교 제15회 졸업기념 사진이 맞는다. 벽에는 마을 주민의 출생과 성장, 학창시절·결혼·회갑을 기념하는 사진이 빼곡히 걸려 있다. 박물관을 나와 걷다 보면 풍영정, 쾌우정 등 소박한 정자가 반긴다. 수령 500년이 넘는 느티나무는 마을의 역사를 품고 있다. 외벽에 살짝 붓칠을 더한 가상정미소는 철커덕 덜컥 소리를 내며 옛 모습 그대로 방아를 찧는다. 어르신들의 손 모양이 찍힌 경로당의 벽, 소망을 적어 보관하는 옛 우물터도 오래된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원조 영천시 문화예술과장은 "산과 하천, 재실과 서원 등 자연과 전통 자원이 많은 마을에 작가들의 작품까지 더해지면서 찾아오는 관광객이 점차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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