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반도 평화에 중국도 책임지는 구도 만들어야

조선일보
  • 유종하 前 외무부 장관
    입력 2018.05.25 03:13

    유종하 前 외무부 장관
    유종하 前 외무부 장관

    북한의 대전환이 건설적 전환이냐 아니면 또 다른 시간 벌기의 덫이냐 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그 속 내용이 드러날 것이다. 북한이 국제 제재 때문에 손을 들었다고 보는 것은 시기상조다. 북한을 절대로 간단히 보아서는 안 된다.

    1993년 북핵 1차 위기 때 필자는 주(駐)유엔 대사로 국제적 논의 현장에 있었다. 미·북 제네바 협정 타결 이후 유엔의 유럽 대사들은 북한 외교력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북한은 70년 동안 그 작은 경제력으로 세계 최강인 미국과 '맞바둑'을 두면서 자신의 위치를 유지해왔다. 북한이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다시 맞바둑을 두겠다고 나온 것을 좋은 기회로만 여기는 것은 아직 이르다.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나온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한 대북 국제 공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입지를 고려하고, 특히 11월 총선과 2020년 대선까지 바라보면서 북핵 문제 해결에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걸고 있다. 이번에는 대한민국이 운전석에 앉아 그 기량을 발휘할 위치에 서게 되었다. 한국의 책임이 무겁다.

    어려운 협상을 할 때는 협상 열쇠가 어디에 있는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협상의 큰 열쇠는 중국이 쥐고 있다. 중국이 한·미 대북 협상에 어느 정도 협조하느냐에 따라 북한의 대응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중국은 북한 대외 무역의 92%, 특히 원유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유류 공급이 줄면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탱크 4000여 대, 항공기 1000여 대, 함정 800여 척이 고철로 바뀔 수 있다. 중국의 대북 무역이 축소되면 사실상 북한 경제의 핵심인 장마당이 말라붙게 된다. 장마당이 위축되면 주민은 물론 장마당 혜택을 받고 있는 권력층도 타격을 받는다.

    중국이 과거와 달리 대북(對北) 제재에 협조하는 것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중국은 미국의 대북 군사 위협이 단지 위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9·11 이후 미국은 통제되지 않는 적대 세력이 미 본토를 공격하는 일은 선제공격을 하더라도 방지한다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중국은 미국의 군사 대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옆집(북한)에 불이 붙으면 내 집도 위험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북한에는 미국보다 중국의 태도가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중국이 남북 및 미·북 대화를 환영하고 자신들도 "역할을 하겠다"고 말한 것을 가장 핵심적인 협상 요인 중 하나로 여겨야 한다. 중국은 한반도에서 전운이 감도는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북한의 안정에도 깊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미는 북한과 평화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을 비중 있게 고려하고 중국이 일정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중국은 한국전 당사자이기 때문에 종전 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 때 당사자로 참여해야 한다. 이것은 명분상 문제일 뿐 아니라 해당 합의를 실천하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다롄(大連)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두 번째 만나고 난 후 북한 태도가 갑자기 강경해진 것을 잘 읽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 문제는 남북한과 미국뿐 아니라 중국도 책임지는 구도에서만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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