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뉴스 읽기] "北사회주의 이미 'IVID'로 해체중… 인프라 투자 서두르면 역효과"

조선일보
  • 안용현 논설위원
    입력 2018.05.24 03:13

    [안용현 논설위원이 만난 北 경제 전문가 김병연 교수]

    북한의 장마당 의존도 70% 이상… 소련 말기, 中 개방 초기보다 높아
    아프리카 수준인 북한 노동력과 변화의 핵 민간기업에 투자한 뒤
    인프라에 돈·기술 투입해야 효과
    北, 무역의존도 52% '수출경제'… 제재로 작년 성장률 -2%로 급락
    北, 중국이 뒷문 열어준다 해도 핵심 돈줄 광물 묶이면 못 버텨

    안용현 논설위원
    안용현 논설위원
    북한 경제 전문가인 김병연 교수는 "대북 투자와 경협에는 순서가 있다"며 "아프리카 수준인 북 노동력과 체제 변화의 핵심인 민간 기업에 먼저 투자한 뒤 인프라에 돈과 기술을 투입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급한 인프라 투자가 다 망한 국영기업을 부활시켜 김정은 체제 강화에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지금 북한 장마당(시장)이 48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1978년 중국이나 1986년 베트남처럼 개혁·개방이 가능한가.

    "소련 붕괴 직전 일반 가정이 시장에서 구입하는 물건 비율이 23%였다. 북은 이 비율이 70% 이상으로 추정된다. 시장 의존도만 보면 소련 말기나 중국·베트남의 개혁·개방 초기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중국·베트남은 시장화가 수준이 낮을 때도 정부가 자본주의 제도를 공식화했다. 반면 북은 시장화 수준이 높아도 제도화는 훨씬 낮다. 시장 의존도가 높다고 개혁·개방이 임박한 것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북 변화를 보여주는 최근 상황은.

    "평양 말로 '집데꼬'는 부동산 중개인이다. 부동산 거주권의 음성적 거래를 돕고 수수료를 챙긴다. 요즘 햇볕 드는 평양 반지하 월세는 50~100달러 수준이다. 시장은 누룩처럼 북 주민의 이윤 욕구를 발효시키는 역할을 한다. 지금 북 시장화는 'IVID(In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수준이다. 불완전하지만 검증 가능하고 거역할 수 없는 (사회주의) 체제 해체를 가져오고 있다. 여기에 제도화가 더해지면 I(불완전)가 C(Complete·완전)로 바뀐다. 'CVID 시장화'가 되는 것이다.

    ―북 무역 의존도는 어느 정도인가.

    "나는 2014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에서 공식 무역이 차지하는 비율을 52%로 추산한다. 한국 무역 의존도는 80%이고 세계 평균은 60%대다. 밀수까지 감안하면 북 무역 의존도는 세계 평균 이상일 수 있다. 북도 우리처럼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가 됐다는 의미다. 특히 주력 수출품인 광물은 인건비가 낮아 이윤율이 80%에 이른다. 제재 이전에는 연간 10억달러(약 1조원) 이상을 수출했는데 적어도 8억달러가 남았다는 얘기다. 개성공단 8곳 운영과 맞먹는 수입이다."

    ―무역을 막는 대북 제재는 어느 정도 타격을 줬나.

    "작년에만 북 수출이 40% 정도 줄었다. 한국으로 치면 반도체·자동차·석유화학·철강 등 간판 수출품 1~4위가 모두 막힌 것이다. 2016년 경제성장률은 3.9%로 추산됐지만 작년 성장률은 마이너스(-) 2%로 떨어졌을 것이다. 제재가 그대로 유지되면 올해 북 수출은 제재 이전보다 90% 감소할 수 있다. 북 외환보유액은 30억~70억달러로 추정된다. 작년에만 무역 적자가 16억달러였다. 이대로 가면 2년 안에 국가 부도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북 시장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은데.

    "지금 북 경제는 무역과 시장이란 두 기둥으로 버티고 있다. 무역이 반쯤 무너졌으니 시장도 오래 버티기 어려운 구조다. 특히 무역은 특권층의 주요 수입원이다. 북 수출액은 실제보다 적게 잡히고, 수입액은 부풀려지는 경향이 있다. 그 차액이 리베이트, 즉 뇌물이다. 중국 단둥의 대북 무역 기업 180여개를 조사했는데 북 광물 수출은 리베이트율이 7%였다. 연 1조원을 팔았다면 700억원의 뒷돈이 생긴다. 소련 붕괴 직전 뇌물 비중은 GDP의 2~3%였지만 북은 6~7%에 이른다. 뇌물로 살아가는 중간 간부층도 제재 타격을 입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21일 관악캠퍼스 연구실에서 북 재건 계획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21일 관악캠퍼스 연구실에서 북 재건 계획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장련성 객원기자
    ―최근 '북한판 마셜 플랜'이란 말이 나오는데.

    "2차 대전 후 미국은 4년간 GDP 1.2% 규모인 124억달러의 세금을 유럽 부흥에 썼다. 마셜 플랜이다. 최근 4년간 미 GDP 1.2%는 9000억달러에 달한다. 지금 미국은 이런 세금을 북에 쓸 생각도, 여력도 없다. 미국은 대북 제재 해제로 민간 자본이 들어가는 물꼬를 터주겠다는 뜻이다."

    ―제재만 풀리면 바로 민간 투자를 받을 수 있나.

    "가능하지만 큰 투자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큰 투자를 위해서는 먼저 북이 국제통화기금(IMF)부터 가입하고 이어 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AD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의 회원이 돼야 한다. 국제금융기구가 글로벌 공적 자금을 투입해야 민간 자본이 본격적으로 들어갈 여건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IMF에 가입하려면 국제 규범에 맞는 북 통계가 있어야 한다. 소련 붕괴 이후 IMF가 들어가 소련 통계를 뜯어고치는 데 2~3년이 걸렸다. 정확한 통계가 없으면 리스크가 커져 투자하려는 자본이 별로 없을 것이다. IMF 가입 전이라도 한·미·중·일 등 각국 정부가 돈을 내 '트러스트 펀드'를 조성, 세계은행이 이를 맡아 북 개발 자금으로 운용할 수도 있다. 이는 미국 의지에 달렸다."

    ―북 재건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나.

    "대(大)경협, 중(中)경협, 소(小)경협을 구분해서 접근해야 한다. 대경협은 서울~평양~베이징 고속철처럼 대규모 자본과 중국 등 해외 참여가 필요한 사업이다. 러시아 관심사인 가스관 연결과 우라늄을 포함한 북 광산 국제 공동 개발도 대경협이다. 북은 각종 통과료나 개발 수익을 챙길 수 있지만, 핵을 다시 개발한다면 한 푼도 얻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북 광산의 경우 국제사회가 공동 개발하면 북이 단독으로 할 때보다 훨씬 많은 수출이 가능하다. 만약 수출이 3배가 되면 북의 모든 4인 가구에 9개월치 생활비(월 50달러 기준)를 줄 수 있다. 우라늄 공동 개발은 핵 통제에도 도움이 된다. 중경협은 개성공단 같은 특구 사업이다. 그러나 종전처럼 임금 직불도 안 되고 통신·통관·통행도 맘대로 안 되는 방식은 곤란하다. 중경협은 북 제도 변화의 첨병이 돼야 한다. 소경협은 민간 차원에서 북 주민과 직접 접촉해 시장화를 촉진하는 사업이다. 국수 기계로 북 주민이 직접 국수를 만들어 시장에 판다면 자연스럽게 시장경제를 익히게 된다. 장마당 경험이 있는 탈북자일수록 남한 적응이 빠르더라."


    북한 경제성장률 그래프

    ―가장 먼저 투자·지원을 해야 할 곳은.

    "노동력과 민간 기업이다. 탈북자를 대상으로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조사했더니 한국의 40% 수준에 그쳤다. 한국이 OECD 평균이라면 북은 아프리카 수준이다. 이 결과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저임금 단순 노동으로는 북 재건이 어렵다. 1970년대 한국은 발전 조건인 자본·기술·제도·인적 자본(노동력) 가운데 자본과 기술만 부족했다. 그러나 북은 네 가지 모두 부족하다. 북 노동력을 교육하고 사기업 등의 제도 변화를 이끌어낸 뒤 돈과 기술을 본격 투입하는 게 순서다."

    ―조심해야 할 경협과 투자는.

    "현 정부 경협안은 타당성도 있지만 모순도 많다. 예를 들면 SOC 투자와 개성공단 확장이 상충한다. 북 경제 규모는 20조원(연 GDP 기준) 정도에 불과하다. 여기에 수십~수백조원짜리 철도·도로 투자를 한꺼번에 넣으면 임금부터 빠르게 뛴다. 개성공단 경쟁력은 140달러(약 15만원) 월급에 있는데 SOC 붐으로 북 월급이 급등하면 개성공단은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 특히 북에 발전소부터 짓고 전력망도 새로 교체했다고 하자. 이런 전기가 국영기업을 되살리는 데 사용되면 어떻게 되겠나. 북 성장과 체제 변화의 핵심인 민간 기업이 싹틀 공간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국영기업이 잘 돌아가면 김정은이 개혁·개방을 하려고 할까."

    무작정 준다고 재건 안돼… 잠비아 아직도 가난 허덕 
    60~70년대 세계銀 등 대거 원조 
    계획대로면 1인 소득 2만달러, 현실은 1200달러 수준 불과

    북한 핵과 북 경제는 함수 관계가 있다. 북이 핵을 고집하면 북 경제는 제재 대상이다. 반면 북이 핵을 포기한다면 북 경제는 투자 대상으로 변한다. 최근 북핵 국면이 요동치면서 북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제재와 투자 사이를 진동하고 있다. 미·북 정상회담에서 핵 폐기를 이끌어내려면 제제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북이 정말 '단기간 완전 핵 폐기'에 합의한다면 북 경제는 도약의 기회를 맞는다. 문제는 북 개발 청사진이 제각각이고 구체적 내용이 없다는 점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이 큰 부자가 될 것"이라고 했지만 누가, 어떻게 한다는 설명은 하지 않았다. '판문점 선언' 등에서 우리 정부가 내놓은 경협안은 11년 전 남북 정상 합의문의 복사판에 가깝다.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병연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한·미에서 나온 방안으로 '북 재건(North korea Reconstruction)'이 가능하다고 보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세계은행 등이 1960~70년대 아프리카 잠비아에 개발 원조를 많이 했는데 이 돈이 제대로 쓰였다면 1990년대 초에 이미 잠비아 1인당 소득은 2만달러가 됐어야 했다"며 "그러나 결과는 아직도 1200달러 수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무작정 준다고 경제 개발이 되는 건 아니다"고 했다.

    ☞김병연 교수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사회주의 체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은 1965~1989년 통계를 바탕으로 소련 경제가 왜, 어떻게 붕괴했는지를 다룬 것이다. 러시아 통계청에 보관된 소련 비밀 통계 문서를 최초로 입수·연구해 학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그가 작년 9월 케임브리지대 출판사에서 펴낸 '북한 경제 베일을 벗기다(Unveiling the North korea Economy)'라는 영문 저서는 북 경제 현실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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