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막다 장비 부서져도… 경찰, 배상 청구 안한다

조선일보
  • 윤동빈 기자
    입력 2018.05.19 03:02

    경찰개혁위의 권고안 수용
    '시위대가 고의성 없으면…' 등 청구 기준에 애매한 단서 달아… 불법 집회 주도자 책임도 완화
    경찰들 "폭력집회 천국 만드나"

    경찰개혁위원회가 집회·시위에서 경찰관이 피해를 보거나 물질적 손해를 당했을 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신중히 제기하라고 권고했다. 경찰개혁위는 "지난 11일 전체회의에서 '집회·시위 관련 손해 발생 시 국가 원고소송 제기 기준' 권고안을 결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앞으로 경찰이 시위대 진압 과정에서 불가피한 접촉으로 발생하는 '통상적 피해'는 민사상 책임을 묻지 않고 국가 예산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경찰관의 신체·장비에 고의로 손해를 가한 직접적 '폭력 행위'에 대해서만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하라는 취지다.

    경찰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경찰개혁위의 권고를 적극 수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권고안이 시행되면, 공권력 행사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권고안은 소송을 제기할 때도 '폭력행위가 경찰 대응과 상관관계에 있는지 여부' 등 8가지 세부 기준을 모두 따져서 진행하도록 했다. 시위대의 소극적 저항에 의한 손해이거나, 고의가 없는 물리적 충돌에서 발생한 장비 손상은 소송을 청구할 수 없게 된다. 특히 '소극적 저항'이나 '고의성 없는 충돌' 등 기준이 모호해 시위대의 폭력에 면죄부를 주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일선 경찰은 "폭력시위를 조장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했다.

    권고안은 불법 집회 주최자에 대한 책임도 완화했다. 경찰개혁위는 현재 진행 중인 소송과 관련해 "집회 주최자 및 단체(단체대표)에 대해 고의로 손해를 발생시켰는지 살피고 전향적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집회 때 손해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주최자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워질 수 있다. 현재 경찰이 진행 중인 집회·시위 관련 국가원고 소송은 광우병 촛불집회(2008년), 쌍용차 집회(2009년), 부산 한진중공업 희망버스(2011년), 세월호 집회, 노동절 집회, 민중총궐기 집회(이상 2015년) 등 6건이다.

    경찰개혁위는 집회·시위를 바라보는 경찰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찰개혁위는 "앞으로 경찰의 판단 기준이 될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가이드라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향후 집회·시위 관련 손해가 발생하면 권고안 기준에 맞춰 소송 제기 여부와 범위를 신중히 판단하겠다"며 "진행 중인 소송은 사건별로 고려해 화해·조정 등 절차를 거쳐 권고 내용에 부합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경찰 안팎에서는 권고안이 실제 시행될 경우 공권력 행사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지금도 집회·시위 과정에서 경찰에 대한 폭력이 심한데, 시위 주동자에 대해 사후 책임조차 물을 수 없다면 공권력이 무력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미 작년부터 시위에 대해 적극 대응하지 않고 있다. 살수차·차벽 배치를 금지하고 있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이 때문에 시위 현장에서 경찰이 질서 유지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작년 11월에는 민노총 건설노조가 폴리스 라인을 뚫고 서울 마포대교 부근을 무단 점거했으나, 경찰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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