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복지 개혁 단행… 나는 총선서 패했지만 독일 경제는 부활"

조선일보
  • 김재곤 기자
    입력 2018.05.18 03:07

    [제9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리더와의 대화

    게르하르트 슈뢰더 前 독일 총리
    개혁의 성과는 몇년 뒤 나타나… 두렵더라도 낡은 제도 고쳐야
    통일 비용 많이 들지만 결국 모두에 이익… 南北도 인내심 필요

    "개혁은 지금 단행해야 하는데 성과는 지금이 아닌 3년, 5년 뒤에 나타납니다. 정치 지도자라면 총선에 패배해도 (개혁을) 선택해야 합니다."

    17일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리더와의 대화' 세션에서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사회로 자신이 총리 재직 시절 추진한 독일의 개혁 정책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개혁의 긍정적인 성과가 나타나기 전에 선거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개혁을 단행한 리더는 낙선할 수 있다"며 "내가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개혁을 선택한 이유로 "낡은 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독일의 미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지난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총리로 재직하면서 소위 '어젠다 2010'으로 대변되는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복지제도를 손보는 등 독일 경제에 구조적 변화를 가져온 당시 개혁은 독일 경제 부활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총선 패배로 슈뢰더 자신의 정치 생명마저 끊어놓는 결과를 가져왔다.

    ◇독일, 유럽의 병자에서 엔진으로

    슈뢰더 전 총리는 "2000~2005년 사이에 독일의 현대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경제 부흥을 위한 기반이 마련됐다"면서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우선 기업 구조를 간소화하면서 자본을 확충했고, 유연하고 완만한 폭의 임금 인상 합의를 도출해 냈으며 '어젠다 2010'으로 대변되는 포괄적 개혁 정책을 통해 세율 인하, 퇴직 연령 상향 조정 등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17일 제9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오른쪽) 전 독일 총리는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진행한 ‘리더와의 대화’ 세션에서 독일의 개혁 경험에 대해 설명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자신의 총선 패배로 이어진 노동·복지 개혁을 밀어붙인 데 대해 “낡은 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독일의 미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7일 제9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오른쪽) 전 독일 총리는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진행한 ‘리더와의 대화’ 세션에서 독일의 개혁 경험에 대해 설명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자신의 총선 패배로 이어진 노동·복지 개혁을 밀어붙인 데 대해 “낡은 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독일의 미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그 결과 현재 독일은 건실한 중소기업 350만곳이 전체 고용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탄탄한 경제구조를 갖추게 됐고, 실업률은 떨어지고 수출은 늘어나면서 통일 이후 최고 경제 상황을 구가하고 있다. 슈뢰더 전 총리는 "독일은 유럽의 '병자'에서 '엔진'으로 전환됐고,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경제가 됐다"고 말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자신이 추진한 개혁에 대해 "혁신친화적, 미래친화적, 우리의 미래 세대인 젊은 층을 위한 개혁이었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그간 한국의 경제성장은 대기업이 주도했지만 이제는 중소·중견기업에도 시장에서 기회를 줘야 한다"며 "한국 경제가 몇 개의 큰 기둥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작은 기둥에 탄탄하게 발을 딛고 서는 것이 한국 경제의 미래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통일, 결국은 모두에게 이익"

    슈뢰더 전 총리는 "우리는 글로벌한 세계에 살고 있다. 글로벌화란 국제 분업"이라고 말했다. 이어 "포퓰리즘 정치가들은 국제 분업으로 생겨난 두려움을 설명하기보다는 이를 이용한다"며 "(정치 지도자들이) 국제 분업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걸 국민에게 인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아메리카 퍼스트'를 표방하는 미국에 대해 "미국이 (자국)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개방된 시장을 무너뜨리려고 하는데, 이는 미국에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방글라데시나 베트남에 있는 섬유 산업을 미국으로 가져갈 수 있겠냐"며 "미국산 자동차를 안 사는 이유는 가격이 아니라 품질 문제인데, 관세를 높여서 독일이나 한국 자동차를 비싸게 하는 게 모두에게 이익이 되겠냐"고도 했다.

    통일 문제도 거론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분단 시절 동독 국민이 통행증을 발급받아 서독을 오갔던 사례를 소개하며, 통일에 앞서 일반 국민 간 교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권의 이익이나 대북 정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날 수 있는 공간과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남북 정치 지도자들이 인식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동독은 동구권에서 가장 성공적인 산업국가였던 데 비해 북한은 그만큼 발전하지 못했다"며 "통일에 대한 환상을 가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또 "(통일 이후) 독일은 매년 GDP(국내총생산)의 4%를 구 동독 지역으로 이전해야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처음엔 이렇게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나 의문이 들겠지만 마지막엔 모두에게 이익이 됐다"며 "남북도 인내심을 가지면 통일의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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