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병역거부' 무죄 내리며 "남북 평화협정 체결해야"

입력 2018.05.18 03:01

[인권법硏 판사, 7장짜리 판결문 곳곳에 정치적 주장 드러내]

"역사는 무기 들고 싸우는 것만이 국가 수호가 아님을 보여줘"라며
"국가는 대체복무 고민하라" 주장

인권법硏 병역거부 학술대회 후 소속 판사들 잇따라 무죄 판결
"대법원 판례 거스를 순 있지만 특정 모임이 주도하는 건 문제"

수원지법 평택지원 형사4단독 이승훈(43) 판사는 16일 종교적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 방모씨 등 4명에게 전원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 판사는 A4 용지 7장짜리 판결문에서 무죄 이유를 자세히 밝혔다.

이 판사는 판결문에서 "우리 역사는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만이 국가 독립을 회복하거나 수호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아님을 실제로 보여준다"며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민주공화국을 수호한 것은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쏜 계엄군이 아니라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택시 운전사였다"고 했다. 이 판사는 "사회 통합 저해와 국가 안보에 대한 우려 때문에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 대체 복무를 허용하지 않고 병역 의무만을 강요하는 것은 국가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책임을 고스란히 그들에게 떠넘기는 것일 뿐"이라며 "국가는 군의 정예화와 인권 개선,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로 안보 우려 해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제) 소수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까지 법치의 혜택을 넓혀가야 한다"며 "시민들은 4·19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및 6월 민주 항쟁을 거쳐 (지난해) 촛불 집회에 이르기까지 민주 항쟁을 통해 부당한 권력이나 억압에 맞서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어 왔다"고 했다.

판결문을 본 다른 판사들 사이에선 "해당 판사의 개인 성향이 적지 않게 반영된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대법원은 2004년 종교적 병역 거부를 유죄로 판단한 이후 일관되게 이를 유지해왔다. 일선 판사가 대법원 판례와 배치되는 판결을 선고할 수는 있다. 문제는 이런 판결 추세가 법원 내 특정 모임의 판단에 따라 이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법원 안팎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이번 판결을 선고한 이 판사는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이다. 이 연구회는 2014년 종교적 병역 거부와 관련한 학술 대회를 열었다. 행사에 참석했던 이 연구회 소속 김영식 부장판사는 언론 인터뷰 등에서 "토론회 전까지는 (이 문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기다려 보자는 생각을 가진 판사가 다수였지만, 토론회 이후 굳이 기다릴 필요 없이 무죄판결을 내리자는 생각을 공유하게 됐다"고 했다. 헌재는 '종교적 병역 거부자 처벌은 합헌'이라는 결정을 이미 두 차례 내렸다. 현재 세 번째 위헌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무죄판결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실제 이 행사 이후 하급심에서 종교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무죄판결이 급증했다. 2004년 첫 무죄판결을 포함해 2014년까지 무죄 선고가 단 2건이었는데, 이 행사 이듬해인 2015년엔 6건으로 늘었다. 그리고 2016년엔 7건, 작년엔 45건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무죄판결을 내린 판사에는 인권법연구회 출신 판사가 다수 포함돼 있다. 강재원·신재환·이형주 부장판사와 김도균·이재욱·이연진·조정민 판사 등이 그 소속이다.

종교적 병역 거부에 대한 인식은 과거와 많이 달라진 측면이 있다. 매년 종교적 병역 거부자 수백 명을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대체 복무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 논란은 헌재가 정리하거나 국회가 입법을 통해 해결할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엄연히 대법원 판례가 있는데 특정 모임 판사들이 조직적으로 성향을 드러내며 판례와 배치되는 판결을 선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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