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살인(X), 여성혐오 살인(O)"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이전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2016년 5월 서울 강남역 상가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살해당한 ‘강남역 살인 사건’ 2주기인 17일. 아침부터 쏟아진 비가 저녁까지 내리는 흐린 날씨 속에서도 우산을 든 시민들이 추모를 위해 오후 7시, 신논현역 6번 출구 앞에 집결했다. 340여개 여성·시민단체 모임인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강남역 살인사건 2주기를 맞아 개최한 추모집회다.
주최측 추산 2000명, 경찰 추산 1000명의 시민들이 인도를 가득 메웠다. 이들은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 “나는 너다, 우리가 서로의 용기다”, “여성혐오 없는 평등한 세상” 등의 피켓을 들었다. 또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불법촬영 처벌하라”, “조선시대 기업이냐 여성차별 웬말이냐” “성폭력 정치인 안 뽑는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집회는 강남역 살인사건 2주기를 추모·묵념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몇몇 활동가들이 발언대에 올라왔다. 발언대에 선 유승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사무차장은 “2년 전 경찰은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했는데, 홍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범죄자에게 남성혐오가 목적이냐는 질문을 한다”며 “경찰은 그동안 여성들을 불법 촬영한 가해자 구속 수사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최원영 행동하는간호사회 활동가는 울먹이면서 “여성들은 회사에서 기쁨조, 성적 대상으로 취급당한다”며 “여성 차별과 폭력에 우리는 더는 침묵하지 않는다. 미투와 위드유(With you·당신과 함께하겠다)를 절대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대학생 이모(19)씨는 “2년 전 강남역 사건이 일어난 뒤, 어쩌면 내가 그 자리에서 피해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페미니즘을 시작했다”며 “여성이 어떤 옷을 입든, 어떤 곳에 가든 안전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밤에 여동생이 늦게 들어와도, 엄마가 늦게 들어와도 걱정 안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장모(19)씨는 “여자들은 다이소에 가서 몰래카메라 구멍을 막는 실리콘을 산다”며 “강남역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달라진 게 없어서 답답하다”고 말했다. 회사원 서경원(30)씨는 “여성혐오 이슈가 잊히지 않기 위해선 촛불집회처럼 한 명이라도 더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성폭력 성추행 관련 범죄에서 가해자를 편드는 말들이 안타깝다”고 했다.
학부모 최영숙(54)씨는 “딸을 가진 부모로서 강남역 살인사건이 굉장히 충격이었다”며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딸이 늦게 들어오면 너무 불안하다. 특히 딸과 연락이 안 될 때는 잠을 못 잘 정도”라고 했다.
주최측인 시민행동은 선언문을 통해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은 여성을 타깃으로 한 여성혐오 범죄였고 이는 명백한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에서 비롯된 폭력”이라며 “더이상 참지 않겠다는 여성들이 미투와 위드유를 외치며 성폭력 성차별을 끝장내자고 외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성평등이 빠진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고, 성평등은 시대의 요구”라며 “성별이 권력과 위계가 돼 차별이 구조화된 사회를 근본부터 개혁해야 한다”고 했다.
시민행동은 강남역 사건 발생장소인 상가 건물이 있는 번화가 골목을 행진할 계획이었지만, 집회 직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페미 시위 염산 테러하겠다’는 글이 올라와 안전이 우려된다는 경찰 요청에 대로변 차도로 행진 동선을 변경했다. 주최측은 “여성은 이 집회에서조차 위협받는다”고 했다.
2016년 5월 17일 새벽 1시, 신논현역 6번 출구 상가 건물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김모(34)씨가 휘두른 흉기에 23세 여성이 숨졌다. 김씨는 “여자를 기다렸다가 범행했다”고 진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