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산업 육성을 위해 일정 기간 규제를 전면 면제해주는 '규제 샌드박스(sandbox·모래놀이상자)'를 도입하기 위한 법안들이 국회에 갇혀 있다. 샌드박스는 4차 산업혁명의 대표 기술인 스마트시티, 자율 주행, 드론 산업 등을 대상으로 아이들 모래 놀이터처럼 아무런 규제 없이 무엇이든 해볼 수 있도록 허용하려는 것이다. 대통령이 지난해 7월 국정과제로 발표하고 추진에 나섰지만 10개월째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정보통신·산업·금융·지역특구 등 네 분야를 샌드박스로 지정하려고 하는데 야당에서는 "업종을 제한하면 오히려 새로운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등의 이유로 막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추진한 규제 프리존(free zone)은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이 반대하고, 정권이 바뀌자 이번에는 자유한국당이 규제 철폐법의 꼬투리를 잡는다. 이런 모습을 보면 나라가 정치 때문에 구제불능이 될 것 같은 절망감마저 든다. 샌드박스는 산업별, 프리존은 지역별로 추진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규제를 푼다는 점에서는 다른 것이 없다. 규제 완화조차도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한다.

세계가 달려가는데 우리는 '샌드박스'와 '프리존'이라는 이름을 갖고 싸운다.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 중에 한국 기업은 단 한 곳에 불과하다.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 가운데 57곳이 사업을 할 수 없거나, 조건부 영업만 가능한 나라가 한국이다. 신성장 동력, 혁신 기업이 거미줄 같은 규제에 막혀 있다. 여당이 샌드박스 대상 확대 등의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야당이 먼저 규제 개혁을 정쟁의 틀에서 빼내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