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김명성의 뉴스 저격] "김정은 계산은… 단순한 평화협정 아닌 절대권력체제를 보장받는 것"

입력 2018.05.18 03:13

오늘의 주제: 北, 그의 저서까지 문제삼아 고위급 회담 취소시켰는데…
태영호 前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公使 인터뷰

- 왜 지금 北이 몽니?
미국 사찰팀이 들어와다 뒤지고 다닌다면 김정은 절대권력의 근간을 흔드는 일

- 美·北, 절충안으로 갈 것
서로 알면서 모르는 척… 북한에 있는 핵을 100% 없앨 수는 없다

- 4대 세습은 불가능
北 내부 모순 극단상황… 공개처형 공포정치로 정권 유지는 한계 있어

북한은 지난 16일 새벽 태영호(56)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를 “천하의 인간쓰레기”라고 비난하며 당일 예정된 남북 고위급 회담을 취소했다. 태 전 공사가 최근 김정은 체제를 비판한 회고록을 낸 것도 트집 잡았다. 마침 이날 오전 서울 시내 모처에서 태 전 공사를 만났다.

당국의 신변 보호를 받고 있는 그는 위축된 기색 없이 "예견했던 일"이라고 했다. "(인터넷에) 태영호가 (북한의) 3층 서기실 사람들과 짜고 책 홍보 제대로 한다는 반응도 있더라"는 농담도 했다. 최근 급변하는 북한 내부 사정을 들어봤다.

―남북 관계가 좋아지는 상황에서 북한은 왜 회담을 취소했나.

"지난 3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방북 때 김정은(국무위원장)이 두 가지 요구 조건을 제시했다. '체제 안전을 보장해 달라. 군사적 위협을 없애 달라. 그러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했다. 여기에 한·미가 오케이해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고 미·북 정상회담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지금 미·북 간에 (구체적 조건을 놓고) 기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이 가장 피하려 했던 건 무엇인가.

"미국은 거대한 경제적 혜택이라는 감람(올리브)나무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라는 채찍을 동시에 흔들고 있다. 그런데 북한은 CVID가 체제 안전 보장이란 큰 원칙에 어긋난다고 본다."

―CVID와 체제 보장이 무슨 관계가 있나.

"북이 생각하는 체제 안전 보장의 핵심은 평화협정 체결 같은 게 아니라 김정은의 절대 권력 구조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CVID는 북한에 들어가 핵 시설과 대상을 사찰하고 가져가겠다는 거다. 미국 사찰팀이 들어와 다 뒤지고 접근한다는 건 김정은 절대 권력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지난 16일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북한이 이날 남북 고위급회담 무산의 책임을 한국에 돌린 데 대해 “미국과 정상회담 의제 조율이 여의치 않으니 한국이 나서 미국을 설득하라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인터뷰 직후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미국이 일방적 핵 포기를 강요하면 조·미 회담에 응할지 재고려하겠다’는 담화를 발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지난 16일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북한이 이날 남북 고위급회담 무산의 책임을 한국에 돌린 데 대해 “미국과 정상회담 의제 조율이 여의치 않으니 한국이 나서 미국을 설득하라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인터뷰 직후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미국이 일방적 핵 포기를 강요하면 조·미 회담에 응할지 재고려하겠다’는 담화를 발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남강호 기자

―겉으론 한·미 훈련을 문제 삼았는데.

"북한이 CVID를 대놓고 못 받겠다고 하면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진짜 의도가 드러나기 때문에 맥스선더 훈련을 트집 잡은 것이다."

―결국 미국과 벌어진 문제 때문인가.

"큰 틀에서 보면 미국과의 문제다."

―북은 왜 한국 정부에 책임 있다고 하나.

"과거 북한은 핵 문제는 미국하고만 논의하고 한국은 끼어들지 말라고 했다. 이번엔 한국이 길잡이가 돼 북한을 미·북 정상회담의 문어귀까지 끌고 왔다. 그런데 물밑에서 미국이랑 회담 의제를 토의해 보니 미국이 예상보다 너무 큰 봇짐을 지웠다. 미국과 직접 얘기가 잘 안 되니 맥스선더 훈련과 내 책을 트집 잡아 한국이 나서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22일 트럼프를 만나지 않느냐. '나 혼자는 힘이 부치니 우리 민족끼리 정신으로 북남이 힘을 합쳐 미국의 태도를 돌리자'는 것이다."

―김정은이 최근 평화공세를 편 이유는.

"김정은은 작년 말까지 이루고자 한 바를 성취했다. 핵실험도 했고, ICBM(대륙간탄도미사일)도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그런데 미국이 'ICBM을 용납할 수 없다. 군사적으로 때려서라도 멈추겠다'고 한 것이 먹힌 것 같다. 또 작년 9월과 12월 안보리 제재는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북한의 민생을 직접 타격한다. 김정은으로선 빨리 제재를 풀어야 하는 상황이다."

―북이 정말 핵을 포기할 거라고 보나?

"많은 사람이 '김정은은 다르다. 젊어서 할아버지 아버지와 달리 핵무기를 내려놓는 통 큰 결단을 내릴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아는 북한은 절대로 핵을 내려놓을 수 없다. 이게 마지막 담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의 기만술을 모르고 있을까.

"현실적으로 북한과 미국은 서로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절충안으로 갈 것이다. 미국도 북한의 핵을 100% 없앨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은 위기 상황에서 쓸 수 있는 핵무기 몇 개는 숨겨놓으려 할 것이다. 김정은은 '조기에 할 수 있는 건 다 내려놓자. 과거 핵 시설을 폐기하고 미래에 할 수 있는 것도 포기하자. 과거(핵)는 폐기, 미래(핵)는 포기, 그러나 현재(핵 프로그램)는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숨통을 열고 장기 집권의 길로 가는 게 김정은의 치밀한 계산이다."

―김정은이 핵을 내려놓고 잘사는 걸 선택할 수도 있지 않나.

"많은 사람은 '김정은이 변하지 않았을까. 핵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로 갈 수 없을까' 생각하는데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중국·베트남식 개혁·개방은 가능한가?

"절대로 할 수 없다. 중국은 개혁·개방에서 사람들의 사상을 해방시켰다. 그런데 북한 시스템에선 주민에게 외부 정보 자유 접근권을 주고, 이동 자유를 주고, 외국 사람도 들어와 살게 하면 체제 유지가 어렵다. 김정일도 상하이에 가서 '천지개벽이다. 중국에서 배울 게 많다'고 했지만, 북에 돌아와선 '중국식 개혁·개방하면 우리는 완전히 망한다'고 했다. 북한은 통제가 쉬운 개성공단식 모델로 갈 것이다."

태영호 전 공사가 2015년 5월 에릭 클랩턴 공연 관람을 위해 영국을 찾은 김정철(김정은의 친형·왼쪽)을 에스코트하고 있다.
태영호 전 공사가 2015년 5월 에릭 클랩턴 공연 관람을 위해 영국을 찾은 김정철(김정은의 친형·왼쪽)을 에스코트하고 있다. /영국 BBC 캡처

―4대 세습까지 이뤄질 가능성은.

"불가능하다. 지금 북한은 빠르게 변하고, 내부 모순도 극단적 상황으로 가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이 심각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가고 있다. 주민들을 감시 통제하려면 공개 처형, 숙청밖에 없다. 공포심으로 인간의 저항심을 누르는 것이다. 이 둘 간의 싸움에서 주민이 이기리라 확신한다."

―앞으로 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북한은 모든 대화를 할 때 근본 원칙을 명백히 제시한다. 우리도 원칙이 있어야 한다. 북한이 군사적 위협 제거를 요구하면, 우리는 북핵 위협 제거를 요구해야 한다. 북한에 수령 절대 권력주의라는 비대칭 무기가 있다면 우리에겐 자유민주주의라는 비대칭 무기가 있다. 내가 김정은을 욕한다고 정부가 (태영호 입을 다물게 하라는) 북한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가치관을 지킬 수 없다."

북한 외무성 유럽국 부국장을 지낸 태 전 공사는 탈북 외교관 중 최고위급 인사다. 2015년 5월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이 에릭 클랩턴 공연을 보러 영국에 왔을 때 안내를 맡았다. 하지만 1년 뒤 아내, 두 아들과 함께 탈북했다. 두 아들은 국내 대학에 재학 중이다.

태영호 저서 출간 사흘만에 초판 1만부 매진…
"금서 될 수 있으니 빨리 사자" 댓글도

'3층 서기실의 암호'

태영호 전(前)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쓴 책 '3층 서기실의 암호'(기파랑)가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출간 사흘 만에 초판 1만부가 모두 팔려나갔다. 나흘째인 17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는 재고가 없어 책을 못 사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이 속출했다. 일부 독자는 "북한이 태영호 발언을 문제 삼자 누군가 전부 수거해 간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교보문고 진영균 홍보담당은 "이렇게 많이 팔릴 줄 몰랐다"고 했다.

태영호 전 공사의 책은 교보문고에서만 4일간 3250부가 팔렸다. 첫날인 14일 600부, 15일 750부가 팔렸고 북한이 남북 고위급 회담 무기한 연기를 통보한 16일에는 첫날보다 2배가 넘는 1250부가 팔렸다. 이 책을 구매한 연령대는 30·40대가 각각 24.7%, 22.4%로 전체 구매자의 절반을 차지했고, 60대 이상 25.3%, 50대 18.4% 순이었다. 박은혜 기파랑 편집실장은 "1쇄를 두 차례에 나눠 5000부씩 1만부를 찍었는데 현재 다 팔렸고, 전국 주요 서점에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면서 "추가로 2만부를 더 찍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온라인에서도 돌풍이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서점 예스24는 14일부터 판매를 시작해 17일 오후 3시 현재 약 3000권을 판매했다. 예스24 측은 "이 책을 찾는 고객들이 많아 재고가 모두 소진됐다. 이후 주문량은 21일부터 추가 발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부 네티즌은 "현 정권에서 금서(禁書)가 될 수 있으니 빨리 사야 한다"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제목의 '3층 서기실'은 북한 노동당 중앙청사 3층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보좌하는 부서를 말한다. 태영호 전 공사는 이 책에서 김정은의 성격, 북한 핵의 형성 과정, 남한의 햇볕정책으로 위기를 넘은 평양의 모습 등을 비롯해 자신의 망명 과정을 자세히 서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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