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法 “부동산 이중매매, 여전히 형사처벌 필요”

입력 2018.05.17 15:22

팔기로 약속하고 중도금까지 받은 땅을 제3자에게 넘기는 ‘부동산 이중매매’에 대해 대법원은 배임 혐의로 형사처벌할 필요가 있다는 종전 입장을 유지하기로 했다. 매수인 보호를 위해 필요한 제도라는 것이다.


대법원/조선DB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17일 상가 건물을 팔기로 하고 중도금까지 받은 뒤 제3자에게 소유권을 넘겨 거래를 불발시킨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로 재판에 넘겨진 권모(68)씨에 대해 각각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소유권을 넘겨줄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중도금이 지급되는 단계에 이르면 매도인은 매수인의 재산적 이익을 보호·관리할 신임관계에 있다”면서 “매도인이 다른 사람에게 부동산을 처분해버리는 행위는 매도인으로서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할 배임행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오래전부터 부동산 이중매매를 배임행위로 판단해 온 기존 판례는 부동산 이중매매를 억제하고 매수인을 보호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면서 “종전의 입장이 부동산 거래의 혼란을 일으킨다거나, 매도인의 거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당초 소부 중 하나인 1부(주심 김신 대법관)가 맡았던 이 사건을 올해 2월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그 동안 판례는 원래 주인이 거래 상대방에게 부동산 소유권을 무사히 넘겨줄 수 있도록 협력할 의무(등기협력의무)가 있다는 전제 아래 부동산 이중매매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판단해왔다. 그러나 부동산 거래의 자유에 국가형벌권이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지적 등이 끊이지 않음에 따라 대법관 전원이 심리에 참여해 판례를 바꿀지 검토하기로 한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 3월 22일 공개변론을 열기도 했다. 대법원이 전문가 단체들로부터 받은 의견은 분분했다. 대한변호사협회, 법무사협회, 공인중개사협회 등은 거래 여건이 성숙할 때까지는 매수인 보호를 위해 형사처벌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은행연합회도 민사절차로만 매수인을 보호하기에는 거래비용 증가 등이 우려된다며 부정적 의견을 냈다.

반면 한국민사법학회, 한국법경제학회 측 관계자 일부는 중도금 거래 관행을 선진화하려면 형사처벌 대신 위약금이나 손해보험제도 등을 활용해 매수인을 보호하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을 냈다. 중도금을 주고 부동산을 사고파는 거래 관행은 법률적 근거도 빈약하고, 외국에서 찾아보기도 힘들다는 게 근거다.

대법관 다수는 여전히 형사처벌로 부동산 이중매매를 제한하는 것이 옳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우리나라 거래의 특수성, 거래관행, 매수인 보호 필요성, 부동산 이중매매를 방지할 제도가 아직 갖춰지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기존 판례대로 형사처벌 하는 게 타당하다는 판결”이라고 했다.

다만 김창석·김신·조희대·권순일·박정화 등 5명의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 대법관은 “중도금을 주고받았다고 해서 거래 상대방일 뿐이었던 매도인과 매수인의 관계가 어느 일방의 재산적 이익을 보호·관리하는 관계로 바뀐다고 볼 근거가 없고, 최종적으로 누구와 거래하든 형사책임을 문제삼지 않아 온 동산(動産) 거래와 차이를 둘 이유도 없다”는 이유다.

권씨는 2014년 8월 13억8000만원에 상가건물을 팔기로 계약한 뒤 계약금과 중도금 등 8억원을 받았다. 잔금 지급이 미뤄지는 사이 권씨는 이듬해 4월 계약 상대방이 아닌 제 3자에게 15억원을 받고 건물을 넘겼다. 검찰은 권씨의 부동산 거래가 배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재판에 넘겼다.

권씨는 그 밖에 국내 시중은행의 대출 담당자 허모(51)씨와 짜고 재무상태가 건전한 것처럼 꾸며낸 가짜 서류로 52억원대 사기대출을 받아 내고, 그 대가로 허씨와 4억원을 주고 받은 혐의(사기 등)도 받았다.

1심은 모든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권씨와 허씨에 대해 각각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사기대출 대가로 금품을 챙긴 허씨는 벌금 4억원과 함께 받은 돈도 추징했다. 2심은 그러나 배임죄에 대한 판단을 무죄로 뒤집고 권씨, 허씨에 대해 각각 징역 5년, 징역 4년으로 감형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